추석치레

에피소드 14. 추석빔의 추억

by 고강훈

<가벼운 일기 같은 글입니다. 그냥 가볍게 읽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릴 적에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일주일 전부터 설렜다.

어머니는 항상 설빔, 추석빔을 챙겨 주셨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 명절 기분 내라고 신발이며 옷이며 사주신 기억이 난다.


이날만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벌을 쫙 빼고 새 신발을 착용하고 이발과 목욕까지 하면 완벽하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까지는 항상 아버지와 목욕탕을 찾았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때마다 목욕 후 문을 나설 때 바나나 단지 우유를 사달라고 떼를 쓰면 무시하시고 야쿠르트도 아닌 요구르트로 넘기셨다. 하지만 명절 전날만큼은 바나나 단지 우유로 기분을 내주셨다. 그 당시에는 뜨거운 열기와 습한 탕이 갑갑하고 뜨거운 열탕이 참기 힘들었기에 자주 가기 싫었었다. 때를 대충 벗기면 어느새 아버지에게 잡혀서 벌겋게 껍데기가 벗겨지곤 했다.

(목욕비에 대한 아버지의 본전 생각이었을까?)

바나나 우유를 먹을 생각에 버티며 내 몸을 맡겼다.


추석빔은 항상 내 개인 취향은 없다. 어머니의 주머니 상황과 오랜 입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단색의 질감이 좋은 옷으로 선택이 된다. 항상 한치수가 크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명절빔 옷을 입으면 내 것 아닌 기분에 '어주 바리'. '어정잡이'가 된다.

분명 새 옷인데도 형한테 물려받은 느낌이다.

브랜드도 없는 길거리표 아동복이다. 시장 난전 가판대에서 자주 팔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풍경은 볼 수가 없다.


신발은 지금처럼 전문 브랜드 매장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적었기에 꿈은 못 꾼다. 그런 매장을 가 본 기억도 없다.

동네 제화점에서 프로 월드컵처럼 생긴 '그냥 월드컵'이나 아식스처럼 생긴 '까발로' 미즈노처럼 생긴 'M' 자 로고가 박힌 유사 제품들이 많았다. 그땐 진품인 줄 알고 신나게 신었다.


신발 고를 때도 개인 취향이 없다. 끈이 없어야 하고 찍찍이 신고 벗기가 간단해야 하고 견고하며 색상은 흰색은 때가 타니 검은색으로 하라는 식이다.

그러면 옷이고 신발이고 다음 명절 때까진 거뜬히 버틸 수 있으니까


어머니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판단은 경제적 상황을 뒷받침해 주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난 하나 건졌다는 생각에 신발은 베개 위 머리맡에 두고 새 옷은 나전칠기로 만들어진 시커먼 장롱 안 구석에 접어서 고이 명절 아침을 기다린다.


이발은 요즘같이 남자가 미용실에 가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이용원에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에게 주로 이발했다.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명절 때문에 손님이 줄지어 앉아 있다.

이발소 내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도 보이고 잡지와 신문을 읽는 사람도 보였다.

내 차례가 되면 아저씨는 의자가 안 내려가니 아이큐 점프 같은 두꺼운 만화책을 의자에 놓거나 빨래판을 걸치고 신발 벗고 위에 올라가서 앉으라고 하신다.

머리카락을 다 자르고 나면 이상한 분가루를 묻힌 붓 같은 도구로 고르기로 한다.

그때는 기분이 너무 좋아 사르르 잠이 오기도 한다. 마치 조경사가 쉴 새 없이 가위질하는 것처럼 예술 작품을 만들 듯 한쪽 눈을 감으시고 삐뚤거나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찾아서 단정하게 만들어 주신다.

아저씨들에게는 뜨거운 수건으로 면도까지 해주시지만 나는 세면대에서 꾸부린 채로 머리를 감는다. 셀프도 있지만 내가 가는 곳의 이발소는 난로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물뿌리개에 대충 담아서 머리에 여서 번 부어 주셨다. 이발사 아저씨의 온도 조절 실패로 '아 뜨거워~' 하면 '남자가 그것도 못 참나?' 이 한마디에 기가 죽고 만다.

이발비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한마디 하신다.


"한번 보자"

"좀 더 짧게 자르지 앞머리 남겨 놓은 건 뭐꼬?"


나의 생명 같은 포인트인데 운이 안 좋으면 강제로 끌려가서 다시 잘려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항상 단정하게 준비한 어린 날의 명절이 생각난다.

요즘은 촌스럽게 추석빔을 하지 않는 풍습이다.

그래도 예전의 그 마음 그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엄마 따라 제수용품을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쫄쫄 따라다녔던 그 길이 생각이 난다.

떡 방앗간 송편과 강밥, 그 앞집에 튀김, 어묵도 얻어먹고….


내가 너무 커버렸나?


갑자기 바나나 단지 우유가 먹고 싶다.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하고 한동안 못 갔던 대중탕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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