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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Apr 17. 2024

그립소

읽고 쓰다

난 소를 키워 보지 못했다. 하지만 시골 외양간에 머물고 있던 소의 모습을 기억한다.

시골 여느 집의 재산 1호였던 누렁이의 모습을 기억한다.

할머니는 짐승들 밥 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시며 우리 집에 하룻밤 머물지 못하고 댁에 가신 것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그 서운함에 외할머니를 붙잡지 못하고 소에게 양보했던 것을 기억한다.

난 그때 한 끼 굶기거나 옆집에 부탁하면 된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내 식구 밥상을 이웃에게 부탁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부탁하는 자체를 싫어하셨다.

잠시나마 할머니의 기억이 다가와 좋았다.


시인이 쓰는 산문은 참 좋다. 최근 시인들의 산문을 두 권 접했다. 

‘좋다.’


시의적절 1월호 김민정 시인의 ‘읽을, 거리’

유병록 시인의 ‘그립소’

‘그립소’는 최근에 윤혜자 작가님께서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되었다.

밥 먹다가 아니, 책 표지만 봐도 울컥이다.

'난다'의 김민정 시인도 유병록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네가 적은 시보다 산문이 더 재밌어.”

김민정 시인이 젤 좋아하는 산문이라고 한다.

누렁이가 보이고, 소여물 통이 보이고, 송아지가 엄마 젖을 무는 것이 보였다. 마치 내가 소를 키우는 집에 자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학교 다녀오면 소 여물통에 사료를 주며 짚단을 얻어주고 물을 부어 주는 일상들.

놀고 싶은데 놀지 못하고 소를 돌봐야 했던 시간이 마치 내가 지나 온 시간 같이 느껴졌다.

엄마 소가 팔려 나갈 때는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 큰 눈망울엔 눈물이 보였다. 반대로 엄마 소는 외양간을 지키고 송아지가 팔려나가는 날에는 엄마 소는 3일간 울어댔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서럽게 운다.

그 심정을 알기에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나의 눈물도 맺혔다. 책을 읽는 동안은 애잔함을 느꼈다.

내가 키운 소를 보낸 것 같았다. 아니, 소가 나를 키워 대학까지 보낸 것만 같았다.

분명 소를 이야기하지만, 가족을 더욱 그립게 하는 이야기다.


그립소.


그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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