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강훈 Apr 24. 2024

새 아파트와 집들이

삶 속에서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어느 봄날이었다. 봄비를 창가에서 마주하고 있노라면 언제나 마음은 평온해진다. 벚꽃잎들이 비를 원망하듯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 주차장에는 큰 벚꽃 나무가 있다. 봄이 오고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면 영화 속 한 장면이 연출된다. 두 동만 나란히 자리 잡은 소형아파트지만 나름 조용하고 작은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는 행복한 집이다. 이사를 몇 번 한 적도 있지만 이곳에 사는 동안만큼은 경제적으로 큰 짐을 덜어 주고 있다.      




내생에 첫 보금자리는 완공 후 처음 입주하는 새 아파트였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는 새 보금자리에 분주하게 이삿짐을 옮겼다. 입주 일자가 결혼 시기와 비슷했기에 이사라고 말하기보단 빈집에 새 물건 채워 넣기 수준이었다. 모든 짐들은 새 가구와 전자제품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운 좋게 입주 날에 맞춰 배송일자를 선택한 덕분이다. 조금씩 모양이 갖추어져 가는 집안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당시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정말 행복했다. 여기가 우리가 살 신혼집이라며 스스로 뿌듯했다. 큰 평수는 아니지만 둘이 살기에 딱 맞는 크기였다. 우리 신체 크기도 아담하니 둘이 살기에는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운이 좋게도 신도시의 아파트 청약 당첨이 되어 결혼의 문턱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선물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사람 사는 집처럼 구색도 갖춰지고 집안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집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눈이 맵지도 않고 깨소금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 집 깨 볶아요’ 하며 사람들을 초대해야 하는데 아내는 도통 말을 꺼내지 않는다. 워낙 사람 만나고 초대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건 알지만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침실이며 전자제품이며 자랑하고 싶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본인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으니 나 역시 친구들을 초대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계획은 아니었다. 아쉬움만 가득 채운 채 둘만의 신혼집 생활이 이어졌다. 최근에 서운하게 한 일이 있었나? 조목조목 되새겨 보아도 없다.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집이 초라한 것도 아닌데 왜일까? 그렇다고 혼자 결정으로 갑자기 들이닥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눈치를 보다 지쳐 천진난만하게 말문을 먼저 열었다.

“여보 우리 집들이 안 해?”

“친구들도 기다리고 있고, 초대해야 나도 면이 설 것 같은데.”

“데리고 오면 되지. 여태 눈치 보고 있었어?”

“그런 건 집안의 가장이 정하고 말해주면 되지?”하며 아내는 말한다.

나는 이내 아내 표정을 보고 되물었다.

“아닌데?”

“여보, 뭔가 있지? 말해봐” 

“사실, 난 이 집을 정리했으면 해”

“힘들게 남편이 마련한 집인데 당신 기분을 언짢게 하기도 싫어서 싫은 내색은 못 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도 새집인데 좀 더 살아봐야지”

“아니, 난 충분해”

“그럼 신중히 같이 고민해 보자.”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는 말을 이었다.

“여보, 우리 빚이 얼마야?”

“아, 전에 말해준 대로 빚이 좀 되지. 그래도 억 소리는 아닌데.” 하고 대충 넘겨버렸다.

“아니 얼마냐고?” 이 말에 난 정확한 금액을 아내에게 말해주었다. 기간을 두고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생 살 집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도 있다고 판단했다.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빚 없이 집 장만을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대부분 은행과 같이 기분 좋게 나눠 사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은 내 것. 거실은 은행 것. 말하자면 이런 식이지. 아끼고 저축해서 은행으로부터 거실을 받을 때까지 열심히 사는 거지. 만기 되는 그날을 위해서다들 그렇게 살아. 하지만 말을 내뱉은 순간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 무게는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빚 없이 아내와 함께 첫출발을 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그것을 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아내는 빚 없이 형편대로 살자는 마음이 더 컸었기에 내 생각과 다르게 상황에 맞게  조금 줄여서 살고 싶은 생각이었다. 내 욕심대로라면 새것을 누리며 이자를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 맞겠지만 아내와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나의 신혼집의 꿈을 이대로 보내기에 너무나 아쉬웠다. 당신을 만난 것만큼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청약 당첨이 얼마나 어려운데 하며 속으로 많이 아쉬워했다. 몇 날 며칠을 같은 고민을 해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동안 아내와 난 집 이야기는 하진 않았다. 결국 집들이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가 먼저 다가와 한마디 한다.

"손"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하였다. 화해를 하자는 말로 짐작하며 ‘음, 그럼 그렇지.’ 하며 손을 내밀어 주었다. 아내는 선뜻 내 손 위에 모르는 통장 하나를 얻어 주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거 뭐야?"

돈의 정체는 나중에 언젠가 중국에서 나오실 장모님을 모실 집을 생각해서 모은 적금이라고 한다. 적금을 해지하고 이자를 어느 정도 갚고 이 집을 팔고 이사를 하자고 했다. 아내가 내민 통장은 너무나 고맙고 뭉클한 마음이었지만, 1년도 채 살지 못한 신혼집은 내심 아쉬웠다. 끝내 이사를 하고 말았다. 일사천리로 집을 내놓고 만난 집이 벚꽃이 휘날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해 준 집이며 장모님을 모시게 해 준 집이다. 통장의 빚도 가벼워 진만큼 이삿짐도 가볍게 느껴진 이삿날이었다. 훗날 아내에게 물었다. 새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면 집값도 오르고 아쉽지 않았냐는 물음에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탈북했을 때는 중국에서 숨어 살 집이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했었고, 오늘 어디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아내의 말에 또 한 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너와 내가 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다. 그리고 집들이는 아직 못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과 사의 선을 넘어온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