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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Apr 25. 2024

여기는 국정원입니다

적절한 만남

“여보세요, 여기는 국정원입니다.”, “당신 아들이 지금 위험한 상황입니다.”라며 다짜고짜 지금 당장 돈을 부치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한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결혼 전 아내가 한국 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내는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 “내가 국정원에서 있었는데 잘 모르시는가 보네요. 국정원이라면서 그것도 모릅니까?”, “애는 무슨? 처녀한테”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화는 끊어졌다고 한다.      



아내는 25살 나이에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탈북한 북한 주민이 한국으로 오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까지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 있다.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3개월씩을 보내야 한다. 약 6개월 동안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필수 수습 과정인 셈이다. 탈북자라면 그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국정원 조사를 마치고 하나원으로 입소하게 된다. 하나원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마친 후 대한민국 호적을 가지게 된다. 국정원은 그들의 정확한 신원과 행적을 조사하는 하는 목적으로 머물게 된다. 보통은 3개월이지만 대상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진짜 북한에서 온 것이 맞는지, 가족이 있는지, 대한민국을 선택한 이유 등 사소한 것부터 알아내는 것이다. 간첩 활동을 하거나 혐의가 있는 사람을 가려내기도 한다. 범죄자는 아니지만 아직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기에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약 3개월간 조사를 받게 된다. 나도 이런 순기능은 존재하리라 짐작은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수시로 불러서 취조하며 신문하던 비슷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조선족이나 중국인이 신분 세탁을 하여 가짜 탈북자 행세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중국 내 탈북자들은 북송을 하면서도 중국 자국민이 탈북자로 위장하는 것을 방조하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유럽의 여러 국가도 있기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국정원 조사의 큰 목적은 위장 탈북자를 가려내려는 주된 이유이다. 위장 탈북자가 아니더라도 힘들지만 누구나 거쳐야 할 과정이기에 대수롭지 않다. 그들은 지금 한국 땅에 있고 앞으로의 행복만을 꿈꾸며 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빨리 흘러 세 살 밖으로 나갈 날만 기다릴 뿐이다.      




아내도 동일한 조건으로 3개월 동안 꼼짝하지 하지 않고 지내야 했다. 낯선 이들과 다인실에서 함께 지내며, 때로는 홀로 조사를 받으면서 보낼 때도 있었고 짧으면 짧다지만 그녀는 3년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바깥세상이 궁금했고 사람이 그리웠고 찬 공기가 그리웠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고 나가는 밖으로 나가는 날만 기다렸다고 한다. 다시 묻겠습니다. “어떻게 왔습니까?”, “가족은 있습니까?”, “혼자 왔습니까?” 수 없이 들어 봤을 질문들이다. 그런 묻는 말에 반사적으로 답변을 하는 나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예전에 아내에게 한국을 왜 선택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내 말에 의하면 한국에 오기 전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했다. 한국 입국 신청의 결정적 이유는 더 가까웠고 언어소통이 가능한 이점이 있었기에 선택했다고 말하며 덧붙여 미국에 갔으면 “당신도 안 만났겠지” 하며 말을 줄인 적이 있다. 괜히 물었다. 




국정원에서 3개월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일이면 국정원을 떠나 하나원에 입소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3개월을 버텼는데 그깟 하루쯤이야 하며 눈을 지그시 감으려는 순간 눈앞에 빛이 들어왔다. 매일 보는 창가에서 비친 빛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도 이쁘게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수많은 네온사인과 가로등 조명들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인공의 불빛들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동안의 모든 시름과 역경을 딛고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저 불빛이 나에게 오라고 한다. 저 불빛이 나를 따뜻하게 반겨 줄 것만 같다. 긴 어둠 속 나의 인생을 밝혀주는 희망의 불빛이었다. 아내는 아직도 그 순간 빛을 기억하며 감정과 마주치곤 한다. “여보, 그땐 너무 행복했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나.”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해마다 빛의 향연이 강물 위에서 열린다. 강물에 띄워진 인공의 유등과 달빛이 어우러져 빛의 축제로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고 있다. 빛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우리의 감정과 심리상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평온함, 차분함, 기쁨, 감동, 사랑, 공포 등을 느끼기도 한다. 빛을 바라볼 때 우리의 기분은 빛의 종류, 강도,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가끔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보러 가기도 하고 그 빛과 함께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찬란한 해가 떠오르는 그 순간에 새벽의 빛이 천천히 땅을 비추며 모든 것을 깨우듯, 우리의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록 인공의 조명 일지라도 빛이 감정과 그 추억이 맞닿아 녹아내린다면 아름다운 순간이 된다.     

그녀의 눈에 아름답게 비친 그 불빛은 ‘자유’ 그 자체였다.


*하나원 :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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