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연애 시절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도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내 기준에서는 맛있는 음식이었지만 아내는 음식에 대해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육류에는 더욱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비건은 아니었지만, 육류를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데이트 약속 장소를 잡을 때도 나에게 한마디 하였다.
“전 고기는 잘 안 먹어요. 특히 물에 빠진 고기는 더욱 싫어요.” 물에 빠진 고기는 손이 아예 안 간다는 말이었다. 물에 빠진 고기라 하면 대표 음식은 돼지국밥인데, 국밥을 같이 먹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결혼 후에도 국밥은 혼자만 먹고 다닌다.
결혼 후 유부남이 되니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식재료는 익숙한데 처음 접해 본 음식들이었다. 중국식 토마토 계란 볶음, 염장된 거위알, 짜사이, 중국식 야채 볶음요리 등이었다. 그중 토마토 계란 볶음은 내 입맛에도 맞았다. 중국에서는 계란과 줄강낭콩을 많이 넣어 볶아먹는다. 계란 스크램블에 토마토나 방울토마토를 적당하게 잘라서 기름에 볶아주면 된다. 토마토가 죽이 되지 않게 마지막에 넣어 불 조절을 적당히 해주면 완성된다. 불을 끄고 맛소금을 적당히 뿌려주면 애들도 좋아하는 밥반찬으로 변신한다. 가끔 북한 명태로 북엇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북한 명태는 다르다고 거듭 강조를 하지만 난 그 맛을 모르겠다. “명태가 명태 맛이지!” 하며 러시아 명태나 북한 명태나 같은 동해 위쪽 바다에서 잡힌 건데 그 맛이 다를지 의심했다. 하도 북한 명태를 자랑하길래 한때 남한의 명태가 동해에서 많이 잡혔던 시절을 생각하며 한 말이었다. 북한 명태가 최고라고 한다.
그리고 ‘두부밥’은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아 지금도 즐겨 먹는다. 말 그대로 유부 대신 두부 사이에 밥을 넣어 만든 밥이다. 유부남이 되어 맛을 보게 된 두부밥이다. 사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두부 요리는 거의 맛을 봤고 그 식감을 알기에 큰 기대는 안 했다. 부엌에서 제법 요리를 하는 듯한 모습에 감탄하며 음식이 눈앞에 오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쑥스러운 듯 상위에 올려놓고 멀찌감치 나를 지켜본다.
“맛이 어때?”
“이거 색다른 맛이야. 팔아도 되겠는데…. 맛있어.”
흐뭇해하는 아내의 얼굴에 엄지척을 한번 해주고 내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맛을 비유하자면 유부초밥의 맛이나 식감과 달리 두부밥은 담백한 두부 맛과 부드러운 식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초밥의 새콤달콤한 맛 대신 두부밥에는 매콤한 소스가 느끼함을 잡아주고 있었다.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제격이다. 생긴 건 유부초밥이나 삼각김밥처럼 삼각형 모양이지만, 맛은 다르다. 유부초밥, 삼각김밥과 함께 이 세 개를 세트 상품으로 팔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아내가 말해 준 두부밥의 요리 순서를 정리해 본다.
1. 재료
부침용 두부 1모, 흰쌀밥, 양파 1/2개, 쪽파 혹은 대파 1대, 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 고춧가루, 소금, 후추, 물엿, 설탕, 깨소금.
2. 만들기
1) 두부 준비
· 두부는 물기를 제거하고, 대각선으로 잘라 세모(삼각형) 모양이 나오도록 준비한다.
· 유부초밥의 세모로 잘린 여러 장의 유부처럼 여러 개 잘라준다.
· 키친타월로 물기를 충분히 제거한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기름이 많이 튄다.
2) 기름에 튀기기
· 물기를 제거한 두부를 기름에 노릇하게 튀기듯이 구워준다.
· 겉이 더 바삭한 식감을 원한다면 전분을 묻혀서 구워도 좋다.
· 두부 부침개보다는 더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서 기름종이 채반에 놓고 기름을 뺀다.
3) 양념 소스 만들기
· 고춧가루, 다진 마늘, 잘게 쓴 대파나 쪽파, 간장, 참기름, 후추를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 두부를 구운 기름에 대파로 파기름을 내고 양념장을 넣어 볶듯이 끓인다.
· 기름을 끓여서 양념장에 붓는 방법도 있지만 상관은 없다. 불향이 나면 좋다.
· 고춧가루가 타지 않게 너무 센 불에서 오래 볶지 않는다.
· 양념장에 소금 간이나 물엿 혹은 설탕은 기호에 맞게 조절한다.
4) 두부에 밥 넣기
· 준비한 밥은 참기름과 소금으로 살짝 밑간을 해도 좋다. (김밥용 밥처럼)
· 미리 구워 둔 두부의 배를 갈라 밥을 넣을 공간을 만든다.
· 두부를 구울 때 미리 배를 갈라서 구워도 상관없다. (두부가 깨질 수 있음)
· 밥을 두부 사이에 넣어 이쁘게 모양을 만든다.
5) 두부밥 완성
· 밥 위에 미리 만든 양념 소스(장)를 바르거나 적당히 얹어 맛있게 먹으면 된다.
위 순서대로 만들어 보니 정말 쉬웠다. 달걀 프라이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유부에 밥을 넣을 수 있다면 누구나 손쉽게 따라 만들 수 있다. 북한식 두부밥 요리지만 비건식 요리가 되기도 한다. 북한 사람이라도 만드는 방식은 집집마다 달랐겠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한 맛을 내고 있다. 북한이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와 고향 음식이 그리워 즐겨 먹기도 한다. 그 때문에, 인터넷에 ‘북한식 두부밥’이라고 검색하면 조리법을 볼 수 있다.
북한 사람들에게 두부밥이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난의 행군의 시기에 만들어진 음식이기도 하지만 두부와 밥은 육류를 쉽게 접하지 못하던 북한의 일반주민들에게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큰 사랑을 받았다. 식량 사정은 좋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영양이 충분하고 간편한 음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콩으로 만든 북한 서민의 대표 영양식으로 두부밥 외에 ‘인조고기밥’이 있다. 인조고기는 ‘콩고기’라고도 불린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도 인조고기를 먹은 기억이 있다. 이 음식들은 돈만 있으면 시장에서 사 먹을 수도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북한의 전통음식은 아니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자주 먹을 수 없고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들었다. 그만큼 식량난에 힘겨운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장마당에서 장사 활동을 활발하게 벌인다. 장마당이 열리면서 보잘것없는 음식까지 귀한 대접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에서 영양이 풍부한 간편식은 김밥 정도로 생각이 들지만 김이 귀한 북한에서 두부밥은 김밥 이상의 귀한 음식이었다. 사회적, 경제적 배경에서 탄생한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온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는 사서 먹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의 상징이자 향수이다.
이런 절절한 음식의 사연을 모르고 처음 두부밥을 접한 남한사람들은 한마디하고 말았다.
“유레카, 이건 정말 맛있는 비건 음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