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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Jun 11. 2024

평양냉면보다 진주냉면을 먼저 만난 북한 여자들

“장모님 냉면 한 뚝배기 아니 한 그릇 하실래예?” 휴일 낮에 장모님에게 점심 메뉴를 권했다. 평소에 면 요리를 너무 좋아하셔서 면이라면 마다하지 않으신다.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근처에 유명한 냉면집을 찾곤 한다. 냉면집마다 맛은 조금씩 다르다. 장모님 입맛에 맞거나 가장 가까운 냉면으로 선택한다. 외출이 힘드시다면 사위는 금방 포장을 해온다. 여름이면 시원한 면 요리가 최고다. 진주에는 진주를 대표하는 진주냉면이 유명하다. 냉면집이 동네마다 하나씩을 있을 정도다.   



  

진주 냉면

물론 북한도 냉면이 유명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북한 냉면이라면 평양식과 함흥식 냉면이 있다. 진주냉면은 메밀면이라는 점에서 평양냉면과 닮았다. 육수는 베이스에 따라 차이가 난다. 나는 궁금하면 못 참는 구석이 있어 장모님께 바로 여쭤보았다.

“혹시 옥류관 평양냉면도 드셔보셨어요?”

“아니, 구경도 못했어.”

“북한 주민들도 배급한 식권으로 줄 서서 먹는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보네요.”     




실상은 그렇다. 다 같은 북한 주민이라고 먹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의 ‘옥류관’은 평양의 대동강 옆에 있는 음식점으로 알고 있다. 평양에 있기에 다른 지역에 있는 북한 주민이 냉면을 먹기 위해 평양으로 온다는 것은 희박하다. 통행의 제한이 있어 통행증이 있어야 하고 친척이나 만나러 간다면 모를까 일부러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이해는 갔지만 마치 평양시민은 특권층들만 누리는 혜택을 보는 것 같았다. 당원도 북한 주민이니 북한 주민들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셈이다. 당원이 아닌 일반 주민은 끼니도 챙기기 힘든데 냉면은 사치일 것이다. 냉면을 대신하며 옥수수면을 즐겼다고 한다. 옥수수면은 국수 면인데 밀가루 대신 옥수숫가루로 면을 뽑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청진에 살았던 장모님과 아내는 옥수수면을 즐겼다고 한다. 그나마 옥수수와 감자는 흔했으니까. 중국에서도 즐겼고 지금 내 곁에서도 한국에서 판매되는 옥수수면을 자주 삶아 먹는 모습을 보았다. 일반 국수 면의 중면보다 조금 더 굵고 노란색을 띤 면발이었다. 치차가 섞인 면도 같은 색이다. 한국까지 와서 옥수수 면을 찾으시나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모녀에게는 향수를 일으키는 음식이었다. 맛있게 드시는 장모님을 볼 때면 가끔 군침이 돌기도 했다.

“한 젓가락 하게?” 이렇게 권하시면 평소처럼 경상도 사투리로 “오데예” 라고 말했겠지만, 이날은 북한식으로 “일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북한말 중 ‘일없어.’, ‘일없습니다.’는 ‘괜찮습니다.’, ‘필요 없습니다.’의 의미로 사양할 때 쓰인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진짜 ‘일’이 없는 줄 알았다. 때로는 필요에 따라 일을 만들 필요도 있다. 너무 사양하면 상대방이 무한하니까….     



진주 냉면


북한에서 냉면을 먹어보지 못했던 두 여자는 남한에서 냉면 맛을 보게 되었다. 진주냉면을 먼저 만났다. 그리고 평양냉면, 함흥냉면도 사위와 함께 즐기고 있다. 평양도 오갈 수 없었던 모녀는 청진에서 남쪽으로 약 900km가 넘게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냉면 맛을 본 것이다. 가끔 내가 요리하며 맛을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울 때가 많다. 누군가의 입을 즐겁게 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장모님, 아니 송여사님 오늘도 면 삶을 까예?”

또 드라마 ‘동이’를 보시던 장모님은 사위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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