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강훈 Jun 04. 2024

우리 집 최애 간식은 옥수수와 감자

“앗, 타는 냄새, 뭐꼬?”

“감자랑 옥수수는 살짝 타야 맛있다.”

내 방안으로 솔솔 들어오는 음식 타는 냄새에 한 마디 크게 외쳤다. 부엌에서 타는 냄새난다며 투덜대는 남편의 목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좀처럼 불을 끄지 않는다.

“냄비 다 타긋다.”

집안의 두 여인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남편은 냄비가 신경 쓰여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지만 쉽사리 가스 불을 끄진 못하고 있다. 숯덩이처럼 까맣게 타버린 냄비 바닥을 여러 번 보았기에 내 속만 타들어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웃기만 하는 두 여인이 밉다. 그리고 부엌을 어슬렁대는 남편을 지켜보던 아내가 말한다. 

“설거지해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참으세요.” 

이 말은 가만있으면 옥수수와 감자를 한 개 준다는 말 같았다. 잠자코 있어야지. 너무 참견하면 먹을 걸 눈앞에 두고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그런데 사흘이 멀다 하고 옥수수와 감자를 먹는 모습을 목격한다. 옥수수가 바닥나면 고구마로 바뀐다. 감자와 고구마를 좋아하는 건 분명 알고 있다. 상자로 구입해서 집에 떨어지는 날이 없을 정도다. 삶은 옥수수도 냉동실에 가득하다. 먹고 싶을 때는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도 하고 고구마나 감자를 삶을 때 같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먹고도 질리지 않다고 하니 할 말은 없다. “북에서 그렇게 실컷 먹었는데 안 질립니꺼?”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오히려 북한에서 재배한 감자와 옥수수가 더 맛있다고 한다. 감자와 옥수수 하면 강원도를 떠올리듯 토양이 남쪽보다 더 비옥한지 모르겠다. 추운 지방이라 더 맛있나 하는 착각도 들기도 한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고 멀리 제주도 감자까지 식탁에서 만날 수 있으니 한반도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국민 작물은 분명하다. 내 주변에도 감자 농사를 짓는 분이 있으니 말이다. 오래전 흉년이나 기근이 찾아왔을 때 주식으로 대신하였던 농작물이 감자였는데 이제는 휴게소에서 여러 종류로 만나는 간식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은 감자와 옥수수는 구경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배급으로 감자와 옥수수를 받으며 혹은 강냉이죽으로 끼니를 채우며 버티는 시절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평양과 가까운 지역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그나마 나은 현실이지만 함경도 인근의 주민은 초근목피를 끼니처럼 먹고산다. 장모님은 장인어른이 살아계셨을 때 북한에서 감자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때는 상황이 조금 나았는지 농사를 지으며 배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한은 멧돼지 때문에 농작물의 피해가 크다. 피해를 막기 위해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은 ‘멧돼지’가 오기 전에 ‘사람 멧돼지’가 감자를 다 파헤쳐 가져간다고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 ‘서리’를 하는 것이었다. 내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살려면 훔쳐서라도 먹어야 하는 현실에 밭주인은 밤새 밭을 지키는 보초가 되기도 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나는 평소 집에서는 삶은 감자를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식량이다. 아내와 장모님이 태우는 감자와 옥수수가 그냥 감자와 옥수수였을까? 냄비 속 타들어 가는 내 속마음과 달리 두 사람에게는 추억이 모락모락 익어가는 중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소중한 식량이었으니까….

“장모님, 감자하고 옥수수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없어서 못 먹지”

“여보, 감자와 옥수수가 그렇게 맛있어?”

“응”

이렇듯 감자국수, 옥수수 국수도 자주 즐기는 우리 집이다. 하지만 나는 밀가루 면이 더 좋다. 

서울과 진주를 오가는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맛있는 통감자버터구이, 회오리 감자를 볼 때면 맛있는 먹거리 식품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에서 배급으로도 먹기 힘든 이 감자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런 삶을 살고 있음에 오늘도 감사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이 외로움의 열쇠는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