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강훈 Apr 26. 2024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적절한 만남

퇴근 후 배드민턴 운동을 열심히 하던 때였다. 아마 이 시기에 운동을 제일 많이 했던 기억이 남는다. 솔로라서 그랬을까? 매일 운동에 집중했던 것 같다. 동호인 사이에는 이미 노총각으로 알려졌기에 걱정하는 맘으로 눈치를 받기도 했다. “네가 지금 여기 운동하러 올 때냐면서” 부지런히 짝을 찾아도 모자랄 판이라며 농담 섞인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짝을 찾아 헤매야 하는데 늘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2015년 3월 평소처럼 체육관을 찾았다. 운동을 마치고 쉬고 있는 나에게 동호인 형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강훈아, 소개팅할래?”

“네?”

“싫나?”

“아니예, 합니더. 소개팅하께예.”

“근데, 북한여자인데 개안나?” 

“네, 그럼요.”

“제가 이런저런 가릴 처지입니꺼?”

이 말을 떨어지게 무섭게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눈앞에서 소개팅 주선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소개팅이라기에 마냥 좋아서 ‘소개팅’, ‘여자’ 이 두 단어에 집중했을 뿐 ‘북한’이라는 단어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지나 알게 되었다. 내가 북한 출신 여자와 소개팅하게 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아가씨는 주선자가 운영하는 제과점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제빵사로 일하던 중 사장님의 눈에 들어 나를 소개해주기로 한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아는 동생의 제과점에도 일을 했던 적이 있기에 이래저래 관계가 엮여 있었다. 양쪽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씨에게 서로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던 터다. 그녀 입장에서는 두 사장님이 ‘왜 그러지?’하고 놀랐을 법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잘난 남자를 소개해 주려고 그랬을까? 기대감만 부풀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 계획적인 우리의 첫 만남의 시작이었다.      




“안녕하세요? 장 사장님 소개로 이번 주 만나 뵙기로 한 고강훈이라고 합니다.” 문자를 보내고 한동안 휴대전화만 쳐다보았다. 답장이 바로 왔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일하는 시간이라 문자 확인이 늦을 것 같았다. 생각한 대로 한동안 답은 없었다. 한두 시간 지나면 연락이 오겠지 하며 신경을 껐다. 평상시라면 초조해하며 조용한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겠지……. 내가 보낸 문자의 문장이 잘못되었나? 오타가 없는지? 상대방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고민했을 터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문자가 참으로 사람 애간장도 태우고 설레게 하는 그런 맛은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카카오톡을 많이 사용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싫어졌다. 대화창에 남겨지는 ‘1’이 나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하고 나의 소심한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에 싫었다. 1등, 청약 1순위, 1위, 1번 등으로 경쟁이나 순번에서 항상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대우받는 ‘1’이 대화창에서만 밉다. 누가 안 읽었네? ‘1’이 남아 있는데……. 혹은 ‘1’이 없어졌는데 답이 없다. *읽씹 당하기도 한다. 단체 대화방이라면 누군지 밝혀내는 사람이 꼭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저녁 늦게 이모티콘과 함께 아주 단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

많이 늦었지만, 문자 답이라도 와서 다행이었다.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의 오프너를 뭐로 할지 고민도 해보고 이것저것 생각이 많다. 만날 장소를 미리 검색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그녀가 편히 올 수 있는 교통도 알아둬야 하고 지리적으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위치인지도 체크하게 된다. 평소와 다르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지 않았다. 다 잘 먹는다는 답변이 올 거라고 예상되었기에 오히려 “싫어하는 음식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는 게 나을 듯했다. 싫어하는 음식만 피한다면 어느 정도는 만족할 것 같았다. 계획적이지만 너무 티 나지 않는 노력도 필요했다. 그 정도는 상대방 최소한의 배려이고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한 대로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곧바로 회신을 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적절한 긴장감과 설렘을 안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전날 코디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고민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아주 편안하고 무난한 차림이다. 평소 입던 옷들로 갖추고 상대방에게 튀지 않는 편안하고 깔끔한 차림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액세서리는 없다. 최고의 액세서리는 얼굴이라는데 나는 시간이 없어서 액세서리는 별도로 구비는 못 했다. 아주 아쉽다. 오늘이 운수 좋은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맘으로 집을 나선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도 된다고 노래로 배웠었는데 나는 30분 먼저 도착하고 말았다. 레스토랑 입구에서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난다. 누군가 문을 연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마치 ‘저 왔어요!’ 하고 나를 부른다. ‘정신 차리고 잘하자!’ 이렇게 입구 쪽을 바라고 보고 있던 나는 걸어오고 있는 소개팅녀와 눈이 마주친다. 눈웃음을 지었다. 멋쩍었지만 속으로 ‘잘했어!’ 하고 나에게 말했다. 자리에 마주 앉았고 가벼운 인사와 함께 어색한 대화를 시작했다. 식당 주인이 볼 때는 누가 봐도 소개팅 자리로 보일 것이다. 어색한 인사, 상기된 얼굴, 어른에게 대할 만한 예의 바른 태도, 테이블의 거리감은 누가 봐도 ‘나 여기 소개팅 왔어요.’ 광고하는 듯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상대방이 어색하지 않게 평소처럼 재치 있는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참느라 아주 힘들었다. 잘 참았다.       




‘제발, 억지로 웃기려고 하지 마! 망친다.’ 나오기 전 친구의 주문이 있었다. 평상시와 다르게 무게감과 진지한 대화를 하였고 호구조사나 식상한 대화는 일절 안 했다. 대화를 아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앞 접시에 담아 챙겨주었고 고기도 썰어 젠틀한 면도 보여주면서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그런데 그녀는 관심이 ‘1’도 없는 눈치였다. 음식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불편한가? 자리를 빨리 일어나고 싶은 건가? 이런저런 나만의 상상 속에서 대화가 끝나 갈 때쯤 그녀가 조심스럽게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일어날까요?”

“네. 일어나시죠.”

나의 속마음은 ‘벌써요?’ 하고 많이 아쉬워하고 있었다. 속마음을 들키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당 직원으로부터 피자 한 판을 받았다. 

‘손도 안 댄 그 피자’ 

자리가 불편해서 못 드셨을 수도 있으니 가져가서 드실 수 있도록 부탁한 것이다. 밖에 나와서 그렇게 정중히 인사하고 첫 만남 인지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기로 한다. 

“이거 가져가세요. 배고프실까 봐 혹시 몰라 포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웃으면서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녀와 가볍게 인사하며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오늘 정말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다음에 또 뵐게요.”

나는 아쉬움과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다. 그다음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 채……. 그렇게 내 손에는 피자 한 판이 들려 있었고 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는 차에 올랐다. 시동을 켜자마자 음악이 흐른다. YB의 ‘너를 보내고’ YB 팬이라 자주 차에서 즐겨 듣는데……. 왜 하필 이 타임에 이 트랙이지……. 차라리 ‘사랑했나 봐’가 나오지. 음악을 들으며 내 실수에 아차 싶었다. 새 음식을 따로 주문 포장을 해야 했구나……. 짧은 생각이 뭔가 부족한 나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좋으면 상대방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 뿐이었다. 상대방은 기분이 좋을 수도, 불쾌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은 못 했다. 나를 일깨우며 그렇게 또 하루 익어 가고 만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다. 첫 만남은 그렇게 저물어 가고 말았다.     



*읽씹:[국어사전] 문자 메시지 따위를 읽고 답하지 아니함.     


#첫만남은너무어려워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는 국정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