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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Apr 29. 2024

그렇게 운명처럼 만나버린 까막까치

적절한 만남

‘원앙이 녹수(綠水)를 만났다.’

우리 속담 중에 적합한 배필을 만났을 때 이르는 말이다. 살다 보니 나에게도 인연이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우리의 첫 만남을 기억했던 바로 그 여인이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꼭 만나게 되어 있다.’ 이 말이 절로 실감이 난다. 그때 기억 속으로 잠시 스며들어 본다. 그녀와 첫 만남 이야기처럼 우리는 무미건조한 대화를 끝으로 헤어졌다. 내 손에 들려있는 피자 한 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기약 없는 후일의 만남의 약속으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와중에 다른 지인들의 소개로 억지 만남으로 인연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했지만, 지속적인 만남의 결실은 없었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났다. 퇴근 후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와 마주하고 있는 형이 나에게 물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어?” 

“아니요.” 하며 나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저번에 누구 만나는 것 같더니 잘 안되는가 봐?” 

“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고 싶지 않아서 단답형으로 형식적인 대답으로 이어나갔다. 형이 관심을 보이며 계속 물어 오니 점점 대답하기가 귀찮아졌다. 형의 마지막 한 마디가 나의 가슴속 깊이 비수를 꽂고 말았다. “야 인마 어깨 좀 펴고, 안되면 또 다른 인연을 찾으면 되고, 네가 진짜 그 사람에게 맘에 있다면 솔직하게 네 맘을 전달하면 되지 않아?” 그래 한번 말이라도 속마음을 전해보자. 나는 생각난 김에 손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렀다. ‘띵딩~~ 띠리링~’ 신호가 간다. 통화 연결음이 길어진다. 잠시 후 낯익은 여성의 음성이 들려온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된다고 말해주는 그 친절한 아가씨’

‘헉’하고 끊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걸어본다. 또 같은 여성의 목소리만 반복된다. 그렇게 세 번째 걸고 그만하자고 맘을 먹고 종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여보세요”

다른 여성의 목소리다. 다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기에 나의 마음을 실어 보냈다.




우리의 만남이 다시 이루어졌을 때 궁금해서 물어봤던 이야기를 그녀의 시점에서 적어본다. 나의 전화가 운명처럼 통화가 이루어졌던 날, 그녀의 하루다. 

한국에 들어와 제빵 일을 배운 뒤로 늘 같은 일상이다. 나는 진주의 동네 빵집에서 일한다. 가맹점은 아니지만 나름 동네에서 꽤 유명한 빵집이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을 하여 문을 열고 혼자서 그날 만들 빵의 재료 준비를 먼저 하고 있었다. 제시간에 빵이 나오는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물론 다른 직원들도 제시간에 출근해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다. 나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만 했다. 오늘은 빵집에 일이 많았다. 튀김소보로도 몇십 개나 만들어서 그런지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몸에는 빵 냄새와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새벽부터 나와서 줄 곳 바쁘게 일을 했으니 늘 퇴근하면 방문을 열고 바로 쓰러질게 분명했다. 일을 마치고 집을 도착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씻으러 가야 하는데 눈이 감긴다. 잠깐이나마 눈을 붙인다. 그렇게 잠깐 잠들고 만다. 눈을 떴다. 휴대전화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부재중 전화가 2 통이다. 누구지 하던 찰나 전화벨이 또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한국에 온 뒤로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다. 오늘도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신경 쓰여 받고 말았다.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라고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아주 크게 들려왔다. 누군지 몰라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이 남성은 나에게 뭔가 간절하게 이야기하려 했다. 그래서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 달 전 소개팅을 한 고강훈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그녀는 전혀 기억이 없는지 내가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전화기 속에는 나의 번호가 없었다. 있어야 할 이유도 없겠지만, 그녀가 바라본 전화기에서는 낯선 번호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계속되는 울림에 받아 본 것이었다. “저 그때 소개팅하고 나서 계속 여운이 남아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녀에게 솔직하게 좋은 감정으로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표현했다. 내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지. ‘나대지 마! 심장아’ 다소 버벅대는 말이었지만 내심 할 말은 다 한 것 같았다. “저에게 3번의 만남의 기회를 주세요. 아직 다 못 보여 드린 것 같습니다. 혹시나 불쾌하거나 언짢으실 수도 있지만 제 말이라도 끝까지 들어주세요” 그렇게 말을 다 끝낸 후 생각해 보니 나 혼자만 일방적으로 말을 했던 것 같다. 마치 통보하는 식이었다.

“거절하실 수도 있지만 선택은 본인이 하시면 됩니다.”

“저는 좋은 만남으로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마음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몇 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녀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 짧고 굵은 한마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네, 그래요.”

그래 어디 세 번 만나 줄 테니 네가 보여주지 못한 것 한번 보여줘 봐라.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 다음 만남의 약속을 잡고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전화기를 흔들며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 날 바로 영화표를 예매를 하였다. 주말에는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지 정확한 퇴근 시간을 말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놓칠쏘냐. 같은 영화를 시간대별로 3개를 예매했다. 이럴 테면 1시, 3시, 5시 이렇게 간격을 두고 예매를 하였다. 전화기를 바라보며 그녀의 연락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무조건 오늘 만나야 한다. 12시가 될 무렵 그녀의 전화번호가 내 전화기를 깨우기 시작한다. 받자마자 바로 물었다.

“언제 퇴근하세요?” 아주 느긋하게 말했다. 제가 영화를 같이 보고 싶어서 예매를 했어요. 

그녀의 대답이 돌아온다. 

“저 1시쯤 가까이 마칠 거 같은데 괜찮겠어요?”

나는 부담되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럼 3시 영화를 보면 딱 좋겠네요. 제가 시간 맞춰서 모시러 갈게요.”

그녀가 준비하는 시간까지 생각해서 거절되지 않도록 내가 생각한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기존에 예매했던 다른 시간은 재빨리 취소하였다. 약속 시간에 만나서 영화를 함께 보았고 그렇게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단지 나의 실수라면 예약할 수 있는 자리만 생각하고 너무 급하게 예매를 한 것이다. 자리에 앉기 전까지 내가 예매한 좌석이 커플석인지 전혀 몰랐다. 그 자리는 팔걸이가 없었다. 의도치 않게 팔과 어깨가 닿기도 했다. 난 무심하게 영화에만 집중했었고, 그녀는 꽤 신경이 쓰였나 보다. 커플석에 팝콘은 하나. 처음에 속으로 웃으며 ‘이 남자 봐라, 제법인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이 남자는 진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의도치 않게 분위기를 만들고 콩닥콩닥했을 그녀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후에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진심이 전달되었다. 그녀 생각에 한국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한다. ‘순진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사실 그때는 오히려 내가 놀라 상영시간 내내 얼어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 3번의 만남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진중한 만남 속에서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그렇게 전화 한 통이 오작교가 되어 *까막까치는 만남을 계속 이어 갈 수 있었다.      


*까막까치 : 까마귀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만, 까마귀는 북한 사람, 까치는 남한 사람을 의미한다. 북한 이주민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남남북녀 사랑을 소재로 한 마당극 '오작교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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