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동안 마주했던 첫 만남. 그녀의 무표정과 단답형의 대답들은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한 시간이었다. 내가 느끼기엔 호감이 단 ‘1’도 없는 표정이었다.
“잘 가요. 금실 씨”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또 만나겠죠.” 아쉬운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만날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지 않겠나 싶었다. 진짜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뒤 그녀와 소개팅을 끝낸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한 손에는 정성스레 포장된 피자 한 판이 들려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들려있던 피자를 어머니께 드리니 너무 좋아하신다.
“아들, 뭐꼬?”
“어무이 드리려고 피자 한 판 사 왔지.”
“니가 웬일이고?”
“금실씨나, 금자씨나 아무나 잡수면 됐지.”
“뭐라꼬?”
“아닙니더.”
어머니 이름은 ‘금자’, 소개팅녀 이름은 ‘금실’ 이름도 비슷하고 인연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기억 속에 오래 남을 평범하지 않은 이름이 분명하다. 소개팅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며칠이 지났다. 소개팅을 마주한 그녀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다음 약속을 만들고 싶어 연락을 취했으나 답은 오지 않았다. 주선자에게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랭했다. 아직은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소개해 준 주선자에 대한 예의상 나온 정도로 해석이 되었다. 게다가 주선자는 그녀의 사장이었으니 마음에도 없는 소개팅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럴 땐 술잔에 기억을 담아 흘려보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마침, 나는 친구 영준이가 운영하는 일본식 선술집으로 향했다. 일식 요리를 배운 친구는 주방에서 직접 요리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가끔은 바에 앉은 손님들과 대화하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그런 사장이다. 나도 그 틈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혼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기분은 좋았다. 기분은 좋은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어무이, 북한여자 며느리는 어떻습니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뭐라꼬? 북한? 술을 먹었으면 곱게 자라!” 사실, 이 말보다 더 심한 말을 들었었다. 살다 살다 북한여자를 며느리로 삼으라고 한다며 곱씹어서 말씀하신 어머니였다. 사실 어머니는 잘난 아들 덕에 아들을 결혼정보업체에 등록시켰지만, 어머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에게 북한 며느리 말씀을 드렸으니, 술주정으로 생각을 하신 것이다. 심기가 아주 불편한 금자씨였다. 이때만 해도 어머니는 앞으로 닥칠 일을 상상도 못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