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강훈 May 04. 2024

나도 귀한 집 넷째 딸입니다

적절한 만남


어느덧 우리 둘의 만남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느 연인들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나 역시 분위기를 틈타 먼저 사귀자는 제안을 하였고, 그렇게 만남은 순조롭게 이어져 갔다. 술잔이 넘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따르는 것처럼 우리의 만남은 절제된 행동과 분위기로 애정을 확인하며 서로에게 취해서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호기심이 사랑으로 변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오늘 마치고 커피 한잔할래?”

“응”

연애하면서 다음 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읽고 있는 책처럼 에필로그가 있고 마침표가 명확히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상황에 맞춰 다음 장을 생각하며 상황을 그려 나가기 마련이다. 중간에 종료되면 책장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난 이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다. 난 약속된 장소에 미리 도착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 준비하고 있었다. 커피숍 문이 열리고 문 앞에서 걸어오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왔어?”

“일찍 왔네?”

“일 마치고 바로 왔어.”

“왜 그래, 커피숍에서 다 보자고 하고, 마치 중요한 말이라도 할 것처럼.”

“그런 거 아이다.” 나도 긴장했는지 사투리가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사실 연애 기간 커피숍은 같이 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커피를 싫어한다. 아이러니 한 부분이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커피숍에서 데이트는 처음이다. 난 그녀가 마실 음료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호수가 보이는 커피숍에서 일부러 분위기를 잡으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그 마음은 어느 정도 전달되었을 것 같다.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기도 하고 정적 속에 시간을 맡기고 있었다.       



  

우리 둘은 커피숍 창문 밖을 바라본다. 진양호 호숫가에 비친 노을은 마치 우리의 만남이 무르익었음을 말해주듯 주홍빛으로 점점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난 저 노을이 지기 전에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나의 숙제였다. 둘은 다시 눈이 마주쳤다.

“할 말 있으면 해”

“어····저기, 있다 아이가” 또 경상도 사투리가 불쑥 나온다.

“그래, 있지.” 그녀가 맞장구를 쳐 준다.

에이 모르겠다.

“이번 추석에 우리 집에 인사하러 갈래?”

“너무 빠르제? 그래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빠른 거 같다.”

“미안 내가 너무 성급했네.”

“방금 한 말을 취소할게.”

사실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는데 내가 뱉은 말은 말도 안 되지 싶다. 난 내가 큰 실수한 마냥 돌이킬 수 없지만 내 한 말들을 주워 담으려 했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하고 앉아 있는 꼴이다.

“그래, 가자”

생각과 달리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해 주었다. 사실 그녀는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만남을 지속하는 동안은 언젠가는 한 번은 겪을 일이라 생각하며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나의 속마음은 쾌재를 부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좋으신 분들이야, 분명 좋아하실 거야” 그녀의 속도 모르고 나 혼자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흔쾌히 승낙은 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겁도 났을 것이고 막막했을 것이다. 사실 그녀는 고향을 떠나 먼 진주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기댈 수 있는 가족은 곁에 없었다. 엄마나 언니들이 곁에 있었더라면 남자 친구의 집에 찾아갈 때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주 아쉬운 상황이다. 그녀의 입장에선 상견례가 될지 모르는 예비 시댁 방문의 느낌은 더욱 부담된다. 하여 주변의 아는 몇 명의 언니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을 것이고 그 심정의 모르는 남자 친구가 편안하게 건넸던 말 한마디는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었었을 것이다.     



그날이 왔다. 추석 전날 나는 그녀와 같이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인사를 드리기로 한 날이다. 그녀의 양손에는 선물 꾸러미와 꽃바구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신다고 이야기한 것을 놓치지 않고 준비했나 보다. 그리고 선물은 여기저기 물어보며 고심 끝에 고른 선물일 것이다.

“언니, 남자친구 집에 처음 가는데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하며 여기저기 물어봤을 상황들을 지레짐작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문 안을 들어섰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고마움의 표시였다.

“어무이, 아부지, 우리 왔습니다.”

미리 연락드려서 그런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참을 기다리셨나 보다. 한 시간이 마치 하루처럼 기다리셨겠지. 내가 부모님 집에 성별이 다른 사람을 처음 모시고 왔으니까 마치 효도하는 마냥 나의 어깨는 천장을 뚫고 나갔다. 부모님은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놓으시고 우리를 크게 환대해 주셨다.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자리에 빨리 앉아 음식을 들었다.      




아버지께서 한 말씀하셨다. 

“살다 살다 이런 날도 오네. 우리 훈이가 아가씨를 다 데꼬 오고”

나는 머쓱했지만 아버지가 저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다. 어머니는 그녀가 준비해 준 꽃에 너무 기분 좋아하셨다. “어버이날 아들놈한테만 받다가 이렇게 뜬금없이 받는 꽃이 더 좋네요.”

“그것도 아가씨한테 받으니 말이야. 고마워요.”

긴장되는 분위기를 어느 정도 풀어 주시려고 애쓰시는 부모님들과 달리 그녀는 무척이나 경직되고 긴장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음식을 어느 정도 먹고 술잔도 오고 갔다. 그녀는 술은 마시지는 않지만, 잔은 채웠다.

“그래, 아가씨는 몇째예요?”

“딸만 넷 중 넷째 딸입니다.”

“부모님은 다 잘 계시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건강하게 잘 계세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민감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난 화제를 돌렸다. 절대 편할 수 없지만, 최대한 불편한 자리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가족과 함께 떨어져 살고 있지만 내가 살아온 삶과 비교해 보았을 때는 맏이보다 더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훌륭한 넷째 딸이었다. 그런 넷째 딸인 그녀를 난 우리 가족으로 만들고 싶은 내 욕심을 숨길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약주가 어느 정도 되셨는지 자리에 있는 모두를 당황케 하셨다.

“아가씨, 그래서 우리 훈이랑 결혼을 하끼요? 마끼요?”     




아뿔싸! 나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지도 모른다. 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한다.

“결혼 생각이 있기에 이 자리에 온 것 아니겠어요?” 하며 미소를 지었다.

속마음과 같을지 다를지 모르지만, 그녀의 재치 있는 대답에 모두를 생각한 말 한마디는 그날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 대답이었다. 그날 밤 넷째 딸과의 첫 가족 인사는 성공적이었다. 그녀의 속마음을 모른 채 야속했던 시간은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결혼한 후 시간이 지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식구가 된 며느리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무례함에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추석 명절에 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술잔을 채우며 한마디 하셨다.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말할게요. “아가씨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요. 한 잔 받아요.” 아내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 이제 며느리가 되어 괜찮아요.” 술잔을 비우며 아내는 미소를 지었다.

이전 10화 그렇게 운명처럼 만나버린 까막까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