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하필이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날아갔을까? 여주인공의 패러글라이더는 의도치 않게 남주인공이 살고 있는 북한 땅에 불시착하게 된다. 남한 여자의 뜻밖의 월북, 북한 남자와의 만남 그리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TV 속 로맨틱 드라마다. 허구의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그 내면의 배경은 우리의 분단 현실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 여주인공은 분명 히 낯선 나라에 온 이방인이었다. 현실을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무섭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남자 주인공과 만남과 사랑으로 이어지고 시간이 흘러 불시착한 상황을 바로잡지만, 남자의 마음속 불시착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추억만 남긴 채 각자의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여권은 유능하다. 우리 여권만 있으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무려 187개국에 이른다. 하지만 어디나 통하는 이 여권으로도 절대 갈 수 없는 나라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 언어와 외모도 같고 뿌리도 같지만 만날 수 없고 만나선 안 되는 사람들이 사는, 이상하고 무섭고 궁금하고 신기한 나라.’ - 출처,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기획 의도 중에서 -
우리 부부 역시 소설 같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있다. 만날 수도, 갈 수도 없는 제일 가까운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도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아내의 결정은 우연이나 돌발 상황은 아니었다. 자유를 갈망하며 한국 땅을 무사히 밟았지만, 그녀 역시 이방인이었다. 여주인공처럼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여자주인공 같은 사랑을 꿈꾸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버텨왔다. 많은 인연을 만나고 안정적인 정착을 꿈꾸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남북녀’라는 말을 앞세워 여러 남자와의 만남을 제안받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결혼 생각보다는 빨리 적응하고 돈을 벌어서 엄마를 모시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스물다섯 살의 젊음을 일과 바꿨다. 엄마를 무사히 모셔 오고 나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 정신을 차려 보니 나이도 들었고, 병든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잠을 자고 쉴 새 없이 달려온 그녀는 뇌경색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초기에 병원을 찾아 진료를 잘 받아 호전된 상태지만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북한 이탈 여성들은 일찍 결혼하는 편이다. 가족이 함께 온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혼자라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빨리 가정을 이루기도 한다. 안정감을 찾을 방법이었다. 아내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일찍 결혼했을 테지만 현실의 문제가 우선이었기에 결혼을 미뤘다고 한다. 물론 나를 만난 이후로 결혼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앞서 우리가 만난 이야기를 했지만,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거머리 같은 나의 구애에 아내가 나에게 단 한마디를 던졌다.
“나, 뇌경색 질환을 가지고 있는데 괜찮겠어?”
“응, 상관없어. 내가 잘 보살펴 줄게.”
그래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는지 맘을 열지 않았다. 아예 결혼 생각이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맘에 안 들어서 떨쳐 내려고 했는지 그땐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헷갈렸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마음이 돌아섰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수는 편지였다. 첫 만남 때부터 써 내려간 편지를 모아두었다. 나중에 고백할 때 주려고 하루하루 그녀에게 편지를 써서 모은 것이었다. 그 편지를 전할 시기가 되어 전해 준 것이고 내 마음이 그녀의 마음으로 정시착한 것이다. 아날로그 감성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움직였다. 결혼식장을 들어서기까지 방심은 금물이란 말을 되새기며 사랑을 자주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뇌경색 질환을 겪은 이야기를 왜 한 거야?”
“도망가나, 안 도망가나 보려고? 안 도망가데.”
호전이 되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사실대로 말해 주고 싶었고 혹시나 내가 겁먹고 망설인다면 부담 주기 싫어 떨쳐내려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살아온 인생 중 젤 잘한 행동이었다. 정말 도망가지 않기를 잘했다. 자유를 찾아온 아내에게 내가 그동안 누린 자유를 마음껏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결혼으로 골인하였고 둘의 사랑은 서로의 마음속에 정시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