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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Jul 18. 2024

북한 여자가 진주를 선택한 이유

타지에서 직장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 줄곧 진주에서 살고 있다.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은 대도시에서의 벌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감수하고 선택했기에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고향인 진주에 살면서 곁에 있는 부모님을 항상 마주할 수 있고 주위를 돌아보면 친구가 있어 내 삶의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아내도 진주에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이유는 나와 전혀 달랐다. 그냥 지도 한 장 속에, 눈에 띈 도시였다. 탈북한 사람들은 한국 생활 정착을 위해 하나원에서 기수별로 몇 개월간 교육을 받는다. 수료일이 다가오면 혼자서 살게 될 지역을 고민하고 정해야 한다. 아내도 그 생각에 설렜다고 한다. 자유 속에 또 다른 자유를 느꼈을까? 그때 그 심정은 나는 알 수가 없다. 본인이 선택할 차례가 왔다. 하나원 담당자가 대한민국 지도 한 장을 넘겨준다. 곰곰이 생각하고 주위 기수들과 공유도 하고 엿들은 정보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오른쪽 손가락으로 짚었다고 한다. 그녀의 마음속으로 내린 단호한 결정은 바로 하나다. “따뜻한 남쪽이 좋겠어. 아주 먼 아래쪽으로” 동기들은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정착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문화적 혜택과 지원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이 많은 대도시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결정이다. 수도권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간혹 마땅한 주거지가 없을 때는 수도권을 벗어나기도 한다. 아내는 이런저런 생각을 따지지 않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담당자에게 아내가 말했다.

“저는 여기에 가서 살게요.”

“알고 가는 거니?”

“아뇨. 그냥 여기서 살고 싶어요. 남쪽이라 아주 따뜻하겠네요.”

“그냥 아무도 없는 제일 남쪽에서 새출발하고 싶어요.”

그렇게 아내의 한국 생활은 작고 아름다운 도시 진주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내에게 진주는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낯선 도시였다.     




나는 서울에서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을 선택했고, 아내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낯선 곳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를 잊고 다시 시작하려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한국에 오자마자 개명부터 하고 싶었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면서 시기를 놓쳤다고 했다. 지금은 별생각 없이 잘 살고 있지만 한 번씩은 이름이 촌스럽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아내가 개명하고 싶은 이유는 과거를 지우고 싶은 생각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생각하기도 싫고 눈물 나서 도저히 지울 수가 없기에 자신의 이름이라도 지워서 잠시나마 기억 속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마치 고향을 잊기 위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것처럼 이름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당신의 이름이 진주처럼 이쁘다. 아내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당장 개명하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해 여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 이름은 이뻐. 한편으로는 제발 이 책이 널리 안 퍼져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착각 속에서 다가오지도 않을 일을 또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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