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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강훈 May 16. 2024

여보, 우리 병원 가자

아내와 나는 이유 없는 둘만의 시간을 종종 가진다. 오늘도 이유 없이 아내를 불러낸다.     

“오늘 외식하자. 간단하게 차려입고 나와”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냐며 집에 있는 냉장고를 파먹자고 닦달하지만 나는 어떤 미동도 없이 강하게 밀어붙인다.     

“있다 봐.”     

겉으로 싫은 기색을 했지만 속으로 내심 반가웠을 테고, 간단하게 차려입고 나오라고 했지만, 한껏 꾸미고 있을 아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월급날도 아니고 냉장고에 먹을 것이 많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막상 나오면 웃음기가 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말해! 말해!”     

“아니 아무 날도 아닌데 그냥 함께 외식하고 싶어서.”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오늘 함께하는 자리를 특별하게 만들면 되지!”

“안 그래?”     

얼렁뚱땅 구실 없는 이야기를 넘기고 함께 식사를 즐기며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매일 먹는 집밥을 하루쯤 양보한다고 집안의 기둥이 뽑힐 정도는 아니니까     




수다를 떨며 걷다 보니 백화점이 코앞이다. 발길을 백화점으로 향하니 팔짱을 빼며 옆구리를 마구 꼬집는다. 

“들어가자. 내가 립스틱 하나 못 사줄까 봐.”

지갑은 가벼웠지만 오히려 내가 더 신이 났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쇼핑을 한창 즐기고 있을 무렵 아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한 매장을 만났다.     

유심히 쳐다보고 있더니 이내 매장 물건을 들어보고 놓아보고 만지작거린다. 귀엽고 이쁜 아기 옷과 신발들이 앙증맞게 진열되어 있었다.     

“여보, 이거 이쁘지 않아?”

“응, 이쁘네….”

“이것도 이쁘지?”

“응”

영혼 없이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말았다. 한동안 움직일 기색을 안 하더니 휙 돌아서 자리를 뜨고 만다.

“안 오고 뭐 해?” 아내가 부른다.

“응, 가.”     

밖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말할까? 말까?’

‘말할까? 말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수백 번 고민을 하였다. 에라, 말해야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냉장고에 있는 소주 한 병을 꺼내 들고 작은 상을 준비했다. 

“여보 한 잔 할래?”

“아까는 운전 때문에 한 잔 못한 게 아쉬워서 그래.”

앞에 있는 소주잔이 마르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보 나 할 말 있어.”

“네, 이야기해 보세요.”

아내의 말이 떨어지자 아내의 빈 잔을 소주로 채우며 이야기의 물꼬를 터기 시작했다.     

“우리, 병원 가자”

“난임 전문병원”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소주잔만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우리 한 번만 더 노력해 보면 안 될까?' 나와 눈 맞춤 속에 내 눈빛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서로가 아이를 원하고는 있지만 성급하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기에 더욱 신중하게 고민하게 된다. 함께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아내가 감내할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험관 시술은 여성에게 배 주사라는 호르몬 주사를 투여하여 과배란 유도부터 난자채취의 과정을 거쳐 배아 이식까지 긴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힘든 과정에 시험관 아기가 100% 성공이라는 보증이 되지 않기에 몸과 마음을 이 모험에 모두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입술도 마르고 소주잔도 마르고 있는 순간 아내가 한 마디 꺼냈다.


“병원은 당신이 알아봐”


이 한마디 말이 너무나 기뻤지만, 기뻐할 수 없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또 다른 터널 속을 들어가고 말았다. 빛이 금방 보일지 긴 어둠 속에서 헤맬지 아무도 모른 채 그저 달려갈 뿐이다. 우리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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