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강훈 May 09. 2024

고객님께 택배가 도착예정입니다

가족의 탄생

‘딩동’ 문자 소리가 울린다. ‘고객님께 택배가 배송될 예정입니다.’ 아내가 문자를 보여준다.

“여보, 뭐 시켰어?”

“아니”

뭐지? 뭘까? 누가 선물을 보냈나 하는 찰나 아내에게 전화벨이 울린다. 앗! ‘어머니’다. 평소 같으면 놀랄 일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놀란다.

“며느리야 전화받아라, 며느리야 얼른 받아라.” 하며 열심히 전화벨이 울어 댄다. 머뭇머뭇하더니 이내 전화를 받는 아내는 긴장된 목소리로 통화버튼을 누른다.

“네, 어머니”

“있다 아이가, 내가 흑염소 즙을 짜서 보냈다. 시간 마차서 꼬박꼬박 꼭 챙겨 먹어라.”

“네~ 어머니.”라고 대답하려던 찰나에 통화 종료음만 들렸다. 본인 할 말만 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으신 어머니였다. 통화를 마친 후 아내는 한숨을 쉰 후 깊은 생각에 빠진다. 몇 해 전 보약도 보내주시며 챙겨 먹으라고 했지만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아내이다.      




한 번은 어머니께서 연락도 없이 집을 찾아오신 때가 있었다. 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 오실 때면 제일 먼저 냉장고부터 여시는 분이다. 마치 군대 내무반에서 일직 하사가 개인 *관물대를 검사하는 것처럼, 아내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가 부모님께 현관 비밀번호는 알려드리지 않았다.)

“언제 보내준 건데 이게 아직도 있니?”

“보내 준 반찬은 먹지도 않고, 안 먹는 거는 좀 제때 버려라.” 이런 잔소리 보다 본인의 영역을 침범한 어머니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어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며 말하고 싶었겠지. 이번에 흑염소 즙을 보내 주신 것은 분명 다른 의미다. 약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서운한 며느리에게 또 보내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기 어렵지만, 나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가 보내신 그 문자는 나는 손자가 보고 싶다는 간곡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어머니가 선택한 말보다 더 강한 의사 전달 방법이었다. 상황을 보고 있자니 나도 뭔가 거들어야 할 눈치다. 나는 바로 어머니께 전화하였다.

“엄마, 이거 만다꼬 보냈노?”

“그거 때문에 전화했나? 고마 보내준 거 챙기무라 해라.”

“그래야 애가 잘 들어선다. 다 생각이 있어 보낸 기다. 어른 말 들어라.”

”아니 우리 알아서 하낀데, 부담스럽거로.”

“내가 챙길 줄 수 있을 때 무라. 나중에 나들면 이런 거도 못 보내준다.”

“그리고 여자는 흑염소 두 마리 정도는 무야 된다더라. 아라쩨?”

“일단은 고맙게 잘 먹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귀띔도 안 해주고 이렇게 불쑥 보내주면 우짜노?” 그렇게 일방적인 엄마의 행동에 나도 재간이 없었다.         




그럼, 아내의 기분은? 엄마의 심정은?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눈치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아내를 잘 이해시키고 엄마가 챙겨주신 선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며 양쪽 기분을 제대로 맞추는 방법밖에 없다. 

“여보, 당신 시어머니가 며느리 건강을 그렇게 챙기시네.”

“이번에는 잘 챙겨 먹어보자.”

“물론 엄마가 당신을 위해 보내신 것도 있지만, 은근히 손자를 기다리시는 것 같네.”

“그렇다고 남은 인생을 아버지 재롱을 보시며 살 수 없는 거 아이가” 우리의 가족계획도 중요하고 부모님의 심정도 헤아려야 하지만 우선은 우리의 처지와 환경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물론 2세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우리 상황을 모르신 채 출산 시기가 늦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 부모님들은 건강상 문제가 있거나 몸이 약해서일 것으로 생각하셨다. 우리 부부가 알아서 한다고 말 한마디 거들기라도 하면 엄마는 꼭 한마디 하셨다.

“내 좋아라고 그라나? 나중에 너희 부부 늙으면 좋으라고 그러는 거지”하시며 서운함을 표현하셨다. 말씀은 우리를 위하셨지만, 내 느낌은 달랐다. 사람이 느끼는 모순적 감정이랄까? 한 번은 부모님 마음에 어긋나게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내를 위한 것일까? 손자를 바라는 것일까? 물론, 둘 다 내 가족을 챙기는 마음이다. 감사한 마음이다. 부담으로 다가온 아내의 마음에 손을 건넨다.

"당신을 위해 걱정하고 챙겨주시는 분이 곁에 있어서 행복하지?"

"난 당신을 위해서 먹었으면 좋겠어."

부담은 갖지 말고 진짜 보약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상황에 맞춰 잘 살아가면 돼. 우리가 노력한 그만큼 행복이 찾아올 거야. 그리고 돌아온 아내의 고마운 한마디. “알았어.”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사랑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내에게 제때 약을 챙겨주는 알람이 되었다.      


*관물대 : 군대에서 개인 물품이나 보급품을 보관하는 일종의 사물함.

이전 08화 내 남편만은 고쳐 쓸 수 있다는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