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 말은 수없이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우리도 서로가 고쳐 쓸 수 있다는 상상으로 시작하였다. 아내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고쳐보겠다고 난리였다. ‘F5... F5... F5’ 기선 제압이라도 하는 듯 신혼생활은 기싸움부터 시작된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부부라면 한 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북한의 기가 세나? 남한의 기가 세나? 겨룰 판이었지만 나라도 휴전인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일찌감치 손을 들었다. 손을 들었다는 표현보다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가 더 낫겠다.
“하지만 여보, 난 고장 나지 않았어.”
“난, 처음부터 고장 난 게 아닌데 당신 입맛에 딱 맞는 새것으로 바꾸고 싶었겠지.”
“안 그래?”
이렇게 몇 마디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은 못 하고 순한 말이 되고 만다.(난 말띠다.)
사람은 맞춤형으로 설계되어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환경에 적응하고 학습하고 자라오면서 많은 변화를 하였다. 분명히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물건이 아니기에 고장 나서 고쳐 쓰는 존재는 더욱 아니다. 그냥 나랑 다를 뿐이다.
살면서 만나는 지인이나 친구들 가운데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고쳐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억지 수준으로 자신에게 맞추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물론 도덕적,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이 판단이 되는 잘못된 행동이라면 고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이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득과 실을 따지는 만남이라면 처음부터 신중히 계산하고 만날 것이다. 굳이 내가 그 사람을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으며 당사자도 원하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가치관을 바꿀 수 없기에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살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기도 한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 더욱 서로를 맞추기를 원한다. 자칫 잘못하면 싸움으로 번져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쉽지 않았지만 나도 노력을 많이 하였다. 신혼 초기 아내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몇 가지 들자면 그렇다.
1. 실실 대며 웃지 않기.
2. 매사에 진지하기.
3. 상대방에 대한 과한 친절로 대하지 않기.
다행히 북한의 *생활총화 수준은 아니라 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면서 항상 웃는 모습을 보인다. 아내가 볼 때는 상대에게 자칫 가볍게 비칠까 봐 평소 걱정을 많이 했었다. 사람들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성 밝은 나의 모습을 본 아내와 옥신각신 말다툼을 한 적도 있다. 진지하지가 않다. 무게감이 없다. 등의 비유가 적절하겠다.
“여보,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있어?”라고 아내가 묻는다면 “몸에 배서 그래” 이렇게 말하고 넘겨 버린다. 아내는 어지간히 신경이 쓰였다.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충분히 고칠 수 있는 행동들도 있고, 쉽게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다. 차라리 세탁기에 양말을 말아서 넣는다든지, 욕실에 나올 때 뒷정리를 안 하고 나온다든지 했다면 그때그때 쉽게 바꾸는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나의 가치관이었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가 인정하고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면 된다. 처음부터 내가 낳은 자식이라면 만들어 갈 수는 있지만, 가치관이 완성된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본인의 욕구 충족이 앞서는 것이다. 누군가는 결혼을 ‘이기주의의 극복이다’라고 말한다.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려는 이기심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남편 내 아내만큼은 내가 고쳐 쓸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우리는 애초 고쳐 쓸 수 없는 존재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아내의 맘에는 들지는 않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내의 잔소리마저 내 삶의 일부분으로 느끼며 감사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성격을 모두 맞출 순 없지만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같은 방향의 눈 맞춤이 아닐까? 그리고 여보, 반품을 받아주지 않는 시어머니는 죄가 없으니 원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를 받아줘서 고마워.
*생활총화 : 북한에서 한 주 동안 자기가 한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자신을 질책하며 더 잘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여러 사람 앞에서 비판받는 사회적 장치로 이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