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소 도희
강화에는 머무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어떤 이는 오래 해 오던 일을 이어갑니다.
강화유니버스와 함께한 이웃을 소개하는 인터뷰 프로젝트, <잠시 더 강화>.
강화에 잠시 더 머물며 갖게 된 100개의 업,
그들이 만들어가는 강화의 100가지 모습을 담습니다.
네 번째로 초대한 이웃은 ‘완초를 다루는 작업자’ 수연소의 도희입니다.
강화에는 완초를 엮는 사람들이 있다.
모종을 심는 것부터 시작해
한 계절 전체를 완초 작업을 위해 쓴다.
과정 안에서는 어떠한 해로운 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손으로 심고, 수확하고, 다듬고,
바람으로 말리고 햇빛에 바래도록 한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엮어 나간다.
이토록 깔끔한 작업 안에서
무엇이든 애써 정의 내리지 않은 채로
나로. 살기로 한 사람이 있다.
완초처럼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강화에 살며 누린 것들을 나누고픈
수연소의 도희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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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초라는 재료에 어떤 매력을 느끼시고 완초 공예를 배우기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유년 시절 모두 강화도에서 보내면서 작은 경험들로만 알고 있다가, 성인이 되고 완초 공예를 제대로 접하게 됐어요. 무형유산 선생님의 기사나 인터뷰도 보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더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강화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되는 수업이 있다기에 배우기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잘 맞아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어요. 사실 그런 이유를 넘어 선생님들의 완초를 대하는 태도들이 제게 좀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저는 물건을 좋아하는데, 사람이 그 물건에 애정을 갖고 있으면 물건이 조금 더 예뻐 보이는 것 같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 선생님들과 함께 계속 수업을 하다 보니 저도 물건과 완초에 갖는 애정이 커져갔어요.
수연소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나만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아마 작업하시는 분들은 모두 작업실을 갖고 싶어 하실 거예요. 하지만 월세라든가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선 개인 작업 외에 불필요한 것들을 진짜 많이 해야 돼서 현실적인 벽이 워낙 크거든요.
그런데 저는 성격 자체가 독립된 공간을 좋아하기도 하고, 완초 작업을 방에서 하기에는 조금 불편해요. 화장실에서 완초를 물에 축여 방으로 끌고 오고, 방에 앉아 작업해 보고 했는데 과정도 번잡스럽고 정리하기도 힘들더라고요. 특히나 모든 일상이 방에서 다 이루어진다는 점이 가장 불편했어요.
그래서 막연히 공간을 꿈꾸다가 상권 활성화 지원 사업을 보게 됐고, 한참 무기력해져 있던 시기여서 더욱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사업 계획서 쓰는 법을 찾기도 하고, 마담 님께도 도움 요청을 드리면서 공간을 위해 계속 준비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방향은 상업적인 공간과 거리가 있어서 고민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많았어요. 컨설팅을 받아도 저와 생각의 대립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도 이 공간에 대한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단은 여백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저는 도자 작업을 했던 사람이니까 도자 작업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있다면 이 공간에서 나누고. 계속 이 공간에서 작업하면서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리고서 현재는 오픈 라운지로 쓰고 있어요. 워케이션이나 작업할 분 계시면 그냥 자유롭게 오셔서 사용하셔도 된다는, 공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손을 통한 언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를 최대한 다 활용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도희 님은 요즘 어떤 “손을 통한 언어”를 만나고 계신지 궁금해요.
최근에 하루 텀을 두고 하루는 70-90대 어르신분들을 대상으로, 하루는 4-5세 아기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게 됐어요. 어르신분들 수업에서는 붓도 안 쥐어보시고 이름도 적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자기들은 이런 거 못 한다고 다 그려줘! 하시더라고요.
인상 깊었던 멘트 중 몇 개 들려드리자면, “이 테이블에는 돌대가리들밖에 없어!” 어떤 할머니는 “우리 집 개새끼가 지랄해서 빨리 가 봐야 돼! 빨리 선생님이 그려줘!” (웃음) 그런데 완성된 걸 보니까 또 다 어떻게 어떻게 하셨더라고요.
저는 기물에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이 어디서든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식상하다고 생각해서 진행을 기피해 왔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들은 처음 해 보시는 경험이라고 하시니까 내 생각이 좀 편협했구나, 생각했고 형태나 가시화된 무언가를 만들지 않더라도 예기치 못한 대화나 상황에서 얻는 언어도 많다고 느꼈어요. 각자의 언어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신기하고 좋았어요.
도희 님은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 나가고 싶으세요?
저 같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저 다운 것에 대해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해 본 적은 없지만 그냥 느낌인 것 같아요. 요즘에는 작업을 어떻게 할지 보다 진짜 나다운 게 뭔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 공간과 수연소라는 이름과 이곳의 가구들을 생각했을 때도 타인의 기준에 맞춰 만들어 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며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식당의 사장님께서 계속 고민하는 제게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그렇게 계속 굴리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거다”. 원래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니 스트레스로 다가왔는데, 그 말씀을 생각하면 언젠가 도달하겠지라는 마인드로 바뀌게 되고 강박도 많이 사라졌어요. 그냥 나는 어쩔 수 없지. 이런 사람이니까. 그냥 계속 인정하며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매번 최악을 생각해요. 비관적으로 생각하되 표출은 하지 않고 대비하는 방식이 제게 맞는 방식 같아요. 수연소나 강화에서 해나갈 활동들이 앞으로 저를 어떤 방향으로 데리고 갈지는 정말 모르니까, 일단 지금은 완초 공예를 하는 사람으로 그냥 있고 싶어요. 흘러가는 대로 지내고 싶어요.
도희의 이야기 안에는
시원한 명료함보다도 더 분명한
‘정의 내리지 않음’이라는 결론이 있었다.
모호해서 더 적확한,
내가 좋아하는 시와도 닮아 있는 태도였다.
결론과 함께 나아가고 만들어나가는
도희의 점들은 어디로 뻗어나가 도달하게 될까?
대화를 마치고
처음으로 나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보다 최악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구르고 굴러갈 내가 그곳에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최악이 될 수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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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무히
Interviewee 수연소 도희 @suyunso.works @suyunso.studio
Photographer 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