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이 납작해지는 순간
아들, 얼마 전 너와 함께 영유아검진을 다녀왔단다. 생후 9개월에서 12개월쯤 하는 3차 영유아 검진이었어.
진료실의 공기는 차분했고, 담당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지. 담담함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의 이 한마디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어.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지만 평균 이하네요.”
대근육 발달이나 언어발달이 평균에 살짝 미달한다는 거였어. 주변 1월생들이 걷기 시작했다는 거에 비해서 아직 너는 걷질 못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거야.
작은 위로가 함께 있는 말이었는데도, 아빠 마음은 위로보다 ‘평균 아래’라는 단어를 먼저 낚아채 버렸어.
그리고 그 단어는 신발 속에 들어온 작은 돌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걸음마다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지.
괜찮다는 말을 들었는데 괜찮지 않은 마음이 생기는 게, 참 이상하면서도 솔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아빠는 그 순간 스스로를 조금 낯설게 바라보기도 했어.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결과지를 펼쳤다 접었다 했어. 종이는 가벼운데, 그 안에 적힌 내용은 아빠 마음을 묵직하게 눌렀어.
대근육 발달이 다소 느려, 아직 걷지 못한다.
침대에 누워 꼼지락 거리기만 하던 네가 이제는 기어 다니기도 하고, 벽이나 의자에 기대 일어나려 할 때마다 신기하게 보게 되는데, 검진표라는 세상의 기준 위에서는 너의 그 모든 노력이 한동안 “아직”이라는 단어로만 요약될 수 있다는 게, 오늘은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어.
내 우주의 중심인 너를 바라보는 내 시선과, 발달 기준표가 정리해 버리는 이 온도 차이가 아빠를 울컥하게 만들었단다.
세상 모든 부모에게 아이는 우주지만, 넓은 우주에서는 그 아이가 분포도 위의 점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차가운 진실이 오늘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어.
그리고 내 우주의 중심인 너도 예외가 아니었고 말이야. 그게 어쩌면 좀 슬펐고, 안쓰러웠고, 동시에 아빠를 아주 겸손하게 만들었단다. ‘내가 느끼는 특별함’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특별함이 세상 밖에서는 얼마나 쉽게 납작해질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제대로 느껴본 기분이었어.
그날 아빠가 느낀 감정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니었어. 슬픔이 있었는데, 그 슬픔은 단지 결과가 아쉬워서가 아니었어.
대근육 운동을 더 시켜줬어야 했을까? 더 자주 놀이방에 가서 바운서 같은 놀이기구를 더 많이 했어야 했을까? 걷기 위해 준비할 사항들을 잘 못 챙긴 건 아닐까? 같이 ‘혹시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아쉬운 마음이 함께 묻어 있는 슬픔이었지.
안쓰러움도 있었어. 너는 너만의 속도로 성실히 자라고 있을 뿐인데, 세상이 들고 있는 시계를 너에게 갖다 대고 싶어지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너를 다그치는 방향으로 흐를까 봐 스스로를 말리는 마음이 같이 왔단다.
그런데 가장 크게 남은 건 겸손이었어. 아빠가 아무리 애를 쓰고 계획을 세워도, 너의 시간표는 아빠가 당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네 시간이 찰 때까지 곁에서 잘 지켜주는 것뿐이라는 걸 느끼게 됐어.
어쩌면 ‘아빠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층위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에도 너를 향한 방향을 잃지 않는 연습인지도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도 아빠는 비슷한 말을 25년 12월 일기에 적어둔 적이 있더라. 세상은 때때로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숫자로 정리하곤 한다고 말이야 [1].
아빠가 숫자가 된 대상일 때는 사실 아무렇지 않았는데, 소중한 우리 아들이 기준표의 숫자가 되니까 받아들이는 게 달랐나 봐.
네가 기준표 위 “평균 이하”라는 말로 정리되는 순간, 아빠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더라. 그 말이 너를 설명해버릴까 봐, 그 한 줄이 너의 이야기를 덮어버릴까 봐, 아빠는 본능적으로 너를 숫자가 아닌 다시 이름으로 불러오고 싶었던 것 같아. 너는 숫자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아빠가 사랑하는 존재니까.
그래서 아빠는 이번 영유아 검진 결과지를 판결문처럼 읽지 않기로 했어. 오히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잠깐 펼쳐보는 지도처럼 생각하기로 했어.
너는 아직 걷지 못하지만, 그건 뒤처짐이 아니라 너의 시간일 뿐이야. 기어가고, 잡고 일어서고, 주춤했다가도 다시 손을 뻗는 그 모든 순간이 이미 너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가는 중이니까.
아들아, 언젠가 네가 홀로 서서 첫발을 떼는 날이 오겠지. 그날 아빠는 분명 크게 기뻐할 거야. 하지만 아빠는 그날만큼이나, 그 전날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아직 걷지 못하던 시간에도 너는 충분히 잘 자라고 있었고, 그 시간은 너를 망친 게 아니라 너를 만들고 있었고, 동시에 아빠도 같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추운 칼바람이 멈춘 날, 사랑하는 아빠가
2026년 2월 21일 토요일
[1] 강남 아빠 일기 - 12편(25년 12월), 언젠가 만날 "억울함"에 대해, https://brunch.co.kr/@gangnamdaddiary/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