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보이는 하늘은 조심해서 옮겨 주세요
호박 설기처럼 노을이 번지면 반듯한 네모로 잘라서
새 이웃들과 나누어 먹으려고요
깨지기 쉬운 웃음과 눈물도 뽁뽁이로 잘 싸서 포장해 주세요
새집에 가서도 분명 요긴하게 사용하겠지요
결혼과 동시에 거의 8년 가까이 살아온 아파트는 20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점검이라도 있는 날에는 계단을 이용할 엄두가 나지 않아 무척 불편했다. 예고 없이 고장이라도 나는 날에는 자꾸 밖을 내다보며 안중에도 없던 땅 위의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슨 하늘 감옥에라도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언제부터인가 땅 가까이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사라가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였다. 작은 마당이 딸린 주택을 얻을 형편은 안 되었고 크기나 구조는 전에 살던 아파트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일 층이라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낮은 산을 끼고 있는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동네가 조용했고 아침에 창문을 열면 바람 속에 풀 냄새, 나무 냄새가 묻어있어 더없이 좋았다. 아파트 화단에는 목련, 대추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등등이 우거져 있어서 발코니에 앉아 있으면 마당을 가진 집처럼 안온했다. 집 안에서 아이들 학교 가는 소리, 유치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소리, 반려견들 짖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과 교류 없이 거의 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은 사라는 이렇게 가까이서 바깥소리를 들을 때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립감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포장이사를 마치고 나머지 짐들을 며칠째 정리하면서도 사라는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라야! 잠깐 이리 와봐!”
발코니에서 짐 정리를 하던 애도가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방에서 책 정리를 하다 말고 발코니로 가니 애도가 한쪽에 길게 놓인 수납장의 뚜껑을 들어 올리며 끙끙대고 있었다.
“그게 뭐지?”
“색깔이 다른 게 아마 전 주인이 뚜껑을 새로 만들어서 덮었나 봐.”
“용도가 뭘까?”
사라는 애도를 도와 길고 두꺼운 나무판자를 들어 올렸다.
“아! 이건, 혹시 화단 아냐?”
제법 깊고 넓은 공간이 드러나자 사라는 놀라서 소리쳤다.
“바닥에 하수구도 있어! 화단 맞아!”
애도는 마치 아내를 위해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얼굴로 사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이사하길 정말 잘했어, 밖에 나무들도 좋은데, 이제 집 안에 화단까지 들일 수 있다니……, 꿈만 같아!”
사라가 좋아하는 모습에 애도는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장 배양토 주문할래. 이걸 다 채우려면 몇 포대가 필요할까? 이쪽은 채소 모종을 심고 저쪽에는 꽃모종을 심을래.”
사라의 말은 빨라졌고 점점 흥분과 기쁨에 고취되어서 하늘이라도 날 듯 가볍게 집 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머지 짐들을 여기저기 옮기고 정리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계속 발코니에 있는 화단에 꽂혀있었다.
‘사라야, 너무 무리하지 마! 너도……, 살아야지!’
애도는 사라가 좋아하는 모습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불안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발코니에 있는 화단에 화초를 심는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화단이 길이도 제법 길고 깊이도 있어서 제일 큰 용량의 배양토 다섯 포대를 주문해서 부었는데도 모자라 세 포대를 더 주문했다. 물이 잘 빠지게 제법 굵직한 돌들을 바닥에 먼저 깔고 배양토를 가득 채웠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작고 귀여운 채소 모종들과 꽃모종들도 도착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 연둣빛 어린 색.’
아이에게서 나는 젖내를 맡듯 사라는 코끝을 채소 잎사귀에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모종삽으로 흙을 파서 모종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화단에 옮겨 심었다. 상추, 쑥갓, 고추 모종을 심고 남은 공간에 팬지와 수선화도 심었다. 작은 알맹이로 빚은 영양제도 적당히 뿌려주고 물을 담뿍 주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은 다 한 거겠지? 이제 무럭무럭 자랄 일만 남았다.’
사라는 흙이 잔뜩 묻은 장갑을 벗지도 않은 채 화단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새초롬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모종들을 계속 바라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리 어둡지?’
사라는 발코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제법 키가 커서 아파트 2층 높이까지 뻗어있는 목련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잎사귀가 원래 저렇게 넓었었나? 왜 이제야 저 잎들이 눈에 들어올까?’
흰 꽃송이들을 전등처럼 매달고 있을 목련 나무들을 봄마다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목련꽃이 지자마자 자라기 시작하는 넓고 진한 초록 잎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가릴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 했다.
‘그래도 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있으니 괜찮겠지?’
사라는 애써 자신을, 아니 방금 심어진 모종들을 위로했다.
사라의 정성과 관심이 무색하게 날이 갈수록, 채소는 성장을 멈춘 듯 시들해졌고 화초들은 잎이 물러지고 썩어 내려앉았다.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줘서 그런가? 일조량도 적은 데……, 습한 게 원인이었을 거야.
미안해서 어쩌지……, 내 새끼들……채소를 수확하고 봄꽃이 피고 지는 걸 보려 했던 건 내 욕심이었나봐.’
죽은 채소와 화초들을 걷어낸 화단은 다시 분주해졌다. 이번에는 직접 화원에 가서 싱싱한 것들로 골라왔다.
‘페페로미아, 아레카야자, 칼라테아……, 그늘에서도 잘 크는 것들이라고 했으니 분명히 잘 자랄 거야.’
물 주는 것을 자제하면서 수시로 발코니 창을 열어 공기가 잘 통하게 하고 잎사귀에 앉은 먼지도 닦아주며 정성으로 화단을 가꾸었다. 때 이른 선풍기도 꺼내서 수시로 바람을 맞게 해주었다. 그런데 한 동안 잘 자라는 듯 보이던 화초들의 잎사귀가 또 말라가기 시작했다. 과습이 걱정돼 물 주는 걸 절제해 왔는데 혹시 수분이 모자란 게 원인인 것 같아서 물을 다시 흠뻑 주었다. 하지만 매가리 없이 고개를 떨구며 노래지던 잎사귀들이 이제는 건들기만 해도 흙 위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블로거가 올린 영상 속에는 아름답게 자란 화초들이 집 안 여기저기에 가득했다. 그녀는 실내에서 화초 키우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화초를 가리킬 때마다 ‘이 아이는’이라고 말했다.
“ 이 아이는…….”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블로거의 말을 따라 하곤 했다. 자신도 시간이 좀 지나면 그녀처럼 튼튼하게 자라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낼 거로 생각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듯 초토화된 사라의 화단은 이제 화초들의 이름을 적은 작은 팻말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대체, 왜 내게 온 작고 여린 것들은 왜……’
사라는 고개를 떨구고 화단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갔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애도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사라야, 이제 넌 할 일을 다 한 거야. 이제 그만하면 됐어. 이것들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거야, 그러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이러다가 너도…….”
참다못한 애도가 조심스럽게 사라를 위로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니? 죽으려고 태어난 것들이 어디 있어? 무슨 말이 그래?”
사라는 눈을 부릅뜨고 애도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대체 왜 나는 매일 이렇게 작은 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게만 오면 얼마 버티지를 못하고 이렇게 다 죽는 거야? 이제 정말 지긋지긋해!”
“이성적으로 생각해! 이건 그 누구 탓도 아냐! 우리 집이 실내에서 화초를 키우기 적합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애도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사라는 절망은 더해갔다.
“아니, 꼭 내 탓만 같아, 나 때문인 것 같다고.”
애도는 사라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만 잊자, 사람들이 보면 웃겠어. 고작 이런 풀들을 앞에 두고 너와 내가 예민해져서 다투는 게 너무 이상해…….”
사라는 애도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며 말했다.
“고작 이런 풀들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란 걸 모르겠어?”
어떻게든 아내의 불안과 절망을 잠재우고 싶었던 애도였지만 사라의 말이 애도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두 사람 사이에 찬 기운이 맴돌았다.
“불행한 기억들이 대체 언제까지 우리 삶을 망치게 둘 거야?”
평소와 다른 애도의 단호한 말투에 사라는 낯선 사람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지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쓸쓸해졌다.
시간이 지나고 사라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아주 걷힌 건 아니었지만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르는 것 같이 보였다. 그녀는 많은 시간들을 서재에서 보냈고 화단이 있는 발코니 쪽으로는 거의 걸음을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말수가 없는 아내였기에 애도는 시간이 흐르면 이런 해프닝도 금세 지나간 일이 될 거로 생각했다.
화단 속 흙들은 숨이 끊어진 생명처럼 점점 말라갔다. 호흡도 맥박도 거의 없는 사람처럼, 뿌리 없는 흙이란 그런 모습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이듬해 봄, 사라가 비장한 얼굴로 직업소개소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필요해요. 사람이……, 물과 약간의 햇빛만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흙이 되어도 좋을 사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