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에 혀를 베었다
계피 맛에서 흐르는 피 맛을 봤다
달콤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조곤조곤 혀를 놀렸을 뿐인데 칼이 갈렸다
애도가 집에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
환절기용 외투가 필요하다고 말한 건 사실 핑계였다. 사라와 다시 합치는 일을 구체적으로 상의하고 싶어서였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집에 들어와서 이전처럼 살면 되는 일이지만 내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죽어 나가는 식물들에 대한 사라의 집착이 도를 넘어 더는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던 애도였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아픈 기억을 잊게 하는 건 사라에 대한 그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의 첫인상을 잊을 수 없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등이 구부정한 채 침묵하는 동안에 눈이 먼 곳을 응시하곤 했다.
특수청소부에 대한 직업이 생소했던 당시에 그녀는 한 잡지사에서 기획한 신생 직업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쌍꺼풀 없는 눈이 빛났고 방금 울고 난 것처럼 콧망울과 뺨이 붉었다.
녹음기를 켜놓고 이것저것 묻는 그녀의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없이 어리숙하게 비쳤을 자신이 부끄러웠고 인터뷰 후에 정말 하고 싶었던 그리고 미처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일에 대한 소회를 메일로 써서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는 원고를 완성할 때까지 필요한 추가적인 인터뷰나 통화 대신 메일로 그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애도의 내성적인 성격이 메일 안에서는 적극적이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진정성이 느껴졌고 굳이 그녀가 고치거나 편집하지 않고 통으로 가져다 써도 나무랄 게 없다고 생각되는 문장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 작은 여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슬픔 비슷한 아우라에 마음이 쓰였다. 애도는 잠겨있는 문 앞에서 오래 서성이다가 똑똑, 노크도 해보고 이런저런 도구를 열쇠 구멍에 넣어보기도 하는 것처럼 조심히 그리고 부드럽게 사라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라는 그런 그에게 결국 마음을 열었다.
애도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때론 심심하고 무료하게, 심드렁하지만 그럭저럭 자족하는, 남들처럼 평범한 결혼 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벌어진 상처들을 꿰매고 누더기가 된 천 위에 새 천을 덮어 바느질한 것처럼 말끔하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사라가 흔쾌히 기다리겠다고 대답했을 때만 해도 그는 이런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가 손수 차린 저녁 식사를 기대했고 가능하면 그날만큼은 그녀와 전처럼 한 침대에서 자고 싶었다.
사라가 좋아하는 흰 소국을 한 다발 손에 든 채 보란 듯이 커튼이 활짝 젖힌 베란다 화단에 들어가 있는 남자와 여자를 보기 전까지 애도는 이런저런 상상에 오래전 그때처럼 설레기까지 했다.
놀람과 실망으로 그는 차가운 길바닥에 드러누운 것처럼 한기를 느꼈다. 사라가 식탁에 커피를 내려놓고 차분한 말투로 마치 준비한 대본을 읽듯이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 여자와는 정말 끝이구나’ 뿐이었다.
“너 정말 돌았구나!”
오랜 침묵 후에 애도의 입에서 나온 첫 말이었다.
사라는 그가 오기 전 열심히 준비했던 말들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말투는 예상보다 너무 무서워 소름이 끼쳤다.
“너 소름 끼치고 무서워.”
애도가 뱉은 말에 사라는 놀랐다. 이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똑같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애도 씨, 나를 이해 못 해도 괜찮아. 그래도 그냥 믿고 기다려주면 안 될까? 많이 걸리지 않을 거야. 직면하고 싸워볼 거야. 누가 이기든 어떤 결론이라도 받아들일 거야. 그러고 나서야 죽은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돼서 내가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 살겠다고 지금 이 일을 저지르는 거야? 넌 그 죽음들을 이용해서 맨날 네 감정에 매몰되고 있어. 너 진짜 죽는 게 뭔지 알아? 그건 더럽고 추할 뿐이야. 징그러운 구더기로 변하는 썩은 육체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게 죽음이야. 내가 죽은 사람이 살던 곳을 청소하고 나면 아무리 몸을 씻고 손이 쓰릴 정도록 닦고 또 닦아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게 끝이 아닐 거야, 아니 끝이 아니야. 그래야만 해. 그래야 내가 한 줌의 희망이라도 갖고 숨 쉴 수 있을 거 같아.”
애도는 황당한 표정으로 사라를 바라봤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몰라서 말문이 막혔다.
“처치곤란과 메론빙수를 내가 살릴 거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손 놓고 구경만 하지 않을 거라고. 그 죽음이라는 게 달려들면 두들겨 패고 침을 뱉고 설득하고……,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거야.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싸워보고 그렇게 해도 안 되는 거라면 미련 없이 승복할 거야.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거라고 인정하고 돌아설 거야”
사라의 표정과 말투는 단호했다.
“송장 치우는 게 소원이면 맘대로 해. 내가 널 어떻게 말리겠어. 다시는 내 얼굴 볼 생각하지 마. 이제 정말 끝내자.”
“알아, 이해해, 내가 이상하고 당신이 맞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 당신 너무 이상해.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당신 같지가 않아, 너무 낯설어.”
사라는 검은 그늘이 덮여 있고 충혈된 눈이 이글거리는 애도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단지 지금 맞닥뜨린 일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애도가 벌떡 일어나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성큼성큼 걷다가 화단에서 잔뜩 주눅 들어있는 처치곤란과 메론빙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분노에 휩싸여 사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송장 치워달라고 나 부르지 마! 그 일도 이제 신물 나.”
사라가 애도의 팔을 잡았다. 애도가 사라의 팔을 세게 뿌리쳤고 사라는 그의 발밑으로 나동그라졌다.
“사라! 사라 씨!”
처치곤란과 메론빙수는 놀라서 동시에 사라의 이름을 불렀다.
“가지 마, 제발, 당신마저 떠나면 난 정말 혼자야.”
사라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애원했다.
”네가 왜 혼자야? 저기 있는 사람인지 식물인지 모를 인간들하고 같이 있잖아?
그리고 네 동생, 죽은 아기들……, 다 끌어안고 지금 살고 있잖아!”
문이 꽝, 하고 부서질 듯 닫혔다.
“저저, 못된 인간 같으니라고. 어쩜 저렇게 싹수없이 말하냐.”
메론빙수가 사라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실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어떤 남자라도 화내는 거 당연해. 뭐라고 할 일 아니야.”
처치곤란이 주저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사라가 듣도록 크게 말했다.
“닦쳐! 화상아! 달린 것들이라고 편드는 거야? 설사 우리가 화단에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있어도 마누라가 좋다면 그만이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라고. 이성이고 지랄이고 그게 다 뭔 소용이야. 사랑이 뭔데? 남들이 뭐라 하든 사랑은 일대일 맞춤이야!”
메론빙수가 애도가 사라진 현관문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으르렁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