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물들어가는 시간
색은 정말 섬세하고 예민한 면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때면 그런 순간이 있다. 스케치는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색을 입히는 순간 어딘가 어색해 보일 때. 형태를 따라 그리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지만, 그 형에 어울리는 색을 고르고, 어울리게 입히는 건 전혀 다른 감각을 요한다. 어쩌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보고 느껴야만 가능한 일이다.
색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낯빛의 채도만으로도 우리는 시간이 밤인지 낮인지, 기쁜 순간인지 슬픈 순간인지 어렴풋이 느낀다. 선명한 선이 처음엔 눈길을 끌지만, 마음을 깊이 머물게 하는 건 결국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색이다. 그 색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우리는 모두 고유의 색을 칠해나간다.
사람에게서 빛이 나는 순간이 있다. 주로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입해 있을 때. 그 색은 인위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을 들여다보고 천천히 물들어 완성된 고유의 색이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반짝이는 눈빛, 사랑스러운 동물을 보며 진심을 담아 웃는 얼굴, 누구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태도. 그런 조각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색을 완성해 낸다.
나는 이것을 ‘물들어간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주 짓는 표정이 얼굴에 스며드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 오래도록 바라본 것들이 천천히 나를 물들인다. 억지로 입힌 색이 아닌, 자연스럽게 스며든 진짜 나의 색.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 빛깔은, 은은하게 퍼지기도 하고, 조용히 반짝이기도 한다.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시간
우리는 때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 그 사람의 색에 반한다. 그리고 더 가까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그 색에 물들기 시작한다. 취향이 닮아가고, 말투가 비슷해지고, 같은 것에 웃고 감동하게 된다. 그것은 누가 누구를 바꾸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변화다.
사랑은 그래서 덧칠이 아니라, 겹쳐진 색에 가깝다. 내 색 위에 너의 색이 포개지고, 그 위에 다시 우리의 이야기가 쌓여 새로운 빛을 낸다. 때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색이 의외로 조화를 이루고, 때로는 너무 비슷해서 경계가 흐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색을 알아가고, 서로의 색을 지켜주며, 아주 천천히 물들어간다.
서로 다른 두 색이 하나의 새로운 색을 이루듯, 둘이 만나 이뤄낸 고유한 색깔임에 더욱 소중하다.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래지기도 하겠지만 닮은 화풍을 지닐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색을 채워가며 완성해 낼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