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관희 Aug 06. 2020

그 많던 오락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취미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애용했던 문장이 있다.


"엄마, 뿅뿅뿅하게 백 원만"


부모님은 재래시장에서 맞벌이를 하셨다. 자식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부모님은 어린것이 칭얼댈 때마다 100원을 내어주셨다. 한창 바쁠 시기에 와서 칭얼대면 500원을 내어주기도 했다. 500원은 장시간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 시절엔 부모님의 가게가 한가해지는 저녁 무렵까지 오락실에서 버텨야만 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먹고, 자고, 울고, 웃고.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손가락 끝에 담아 열심히도 두들겼다. 오락실은 어린 나에겐 삶의 터전이자 하나의 왕국이었다. 한데 우리의 삶이 녹록지 않듯 오락실에서도 몇 백 원으로 장시간을 버텨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오락실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1. 혼자 하는 게임 중에 스토리가 길고 쉬운 게임을 고른다.

2. 대전 게임을 해서 상대방을 계속 이긴다.


첫 번째 방법이 시간을 때우기엔 무난하지만 매번 같은 스토리를 깨다 보면 지겹기 마련이다. 오락이란 아무래도 컴퓨터보단 사람이랑 해야 제 맛.

그런 이유로 난 대전 게임을 주로 했다. 한데 이 대전 게임이라는 게 상대방을 이겨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벌이다. 실로 살벌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100원이면 지금보다 두배는 큰 쌍쌍바 혹은 스크류바, 아니면 죠스바나 빠삐코를 사 먹을 수 있는 거액이었다. 한마디로 칼과 방패만 안 들었지 성장기 소년들의 콜로세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컴컴한 지하실에서 매번 살아남은 자가 있으니 바로 이 몸 되시겠다. 나는 노련한 검투사였다.


90년대 검투사의 기록


동네 오락실 터줏대감으로서 대전 게임을 하고 있는 낯선 이들의 실력을 쓰윽하고 살핀다. 나와 대등한 형, 누나들의 오락실 출근 시간쯤은 이미 파악하고 있다.

 '오늘은 장시간 게임을 즐길 수 있겠군'이란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대결을 신청한다. 결과는 볼 것도 없다. 나의 승리.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대결을 신청한다. 손쉽게 승리.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해도 이기고, 한쪽 눈을 감고 해도 이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반대편에서 "쾅"하고 오락기에 화풀이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린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심각한 고뇌에 빠진다. '봐줘야 할까? 그럼 나의 금싸라기 같은 100원은 어쩌지?' 나의 목숨과 100원을 두고 저울질해본다. 비슷한 무게다. 끝내 목숨을 걸고 수많은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는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며 이겨버리고 만다.


하나 승리해도 기쁨은 없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다. 뒷목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냉기와 엄습해 오는 공포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다. 긴장한 나는 습관적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담배연기가 자욱이 흐르는 잿빛 허공. 그 위로 씨벌건 물체가 불쑥 등장한다. 두 눈은 붉게 타오르고 분노로 가득 찬 정수리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모든 사물을 녹여낼 듯하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실사판, 아니 그보다 심하다.

그 공포의 대가리는 오락실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오락기 너머에 있는 나를 직시한다. 팽창되어 있는 동공은 아빠가 생선가게에서 팔고 있는 자반고등어의 눈깔을 닮아 있다. 형언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대가리의 밑쪽 구멍이 살짝 벌어지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쌍욕과 함께 협박성 짙은 표현들이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한 번만 더 얍삽이 쓰면 죽여버린다"  


90년대 검투사의 기록 끝


90년대 중고등학교 국어 책 가장 첫 페이지에 실렸던 걸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가 똑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얍삽이 쓰면 죽여버린다. 상투적이다 못해 진부해서 사실 무섭진 않았다. 그놈들의 성난 얼굴이 무서웠을 뿐이다. 나쁜 놈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뜨끔한 사람이 있다면 반성하길 바란다. 승부의 세계에선 얍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실력이다.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할 방도가 없었던 나는 열심히 하는 척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져주곤 했다. 져주는 데도 기술이 요구됐다. 성의 없게 져주면 시뻘건 홍당무 같은 얼굴을 하고 옥수수 같은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내쪽으로 달려오는 놈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져주고 나면 일단 잽싸게 자리를 피한 후, 오락실 창문 너머로 그놈이 언제 오락실을 떠날까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회귀하는 한 마리의 연어처럼,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결국 오락실 밖에 없었다.


오락실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지 얼마나 되었을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과 함께 등장한 PC방은 차츰차츰 오락실의 영역을 침범하더니 끝내 그 찬란했던 제국의 종말을 선언케 했다. 이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던 꿈의 제국은 아득히 먼 곳으로 저물었다.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가던 오락실들 마저 영화관에 딸려있는 부수적인 공간으로 변질되거나, 인형 뽑기와 다트 게임의 등쌀에 치여 말 그대로 가벼운 "오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렇다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순 없으니 그저 추억하며 살아갈 뿐이다. 추억 속 행복과 현실의 그리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가볍게 미소 지을 뿐이다.


삶이란, 오락실 밑바닥 먼지 구덩이 사이에서 반짝이는 100원짜리 은빛 동전이다.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우린 어둠 속에서도 스러져가는 한줄기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


-90년대 가난했던 어느 검투사의 명언-



참고로 몇 년 전, 노량진에 있는 오락실을 우연히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 지역은 절대 가지 마라.


얍삽이 쓴다. 나쁜놈들.

작가의 이전글 탄산음료를 좋아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