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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희 Aug 12. 2020

영화 음악을 듣고 지려 본 일이 있나요?

음악


얼마 전 영화 음악계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님께서 작고하셨다. 이 분으로 말하자면 <시네마 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등을 비롯해 500편이 넘는 영화 음악을 만드신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그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생전에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킨 위대한 전설!


나의 사랑 모리꼬네 형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에 우선적으로 '영화 음악'이란 것에 대해 간단히 집고 넘어가 보려 하는데 괜찮을지요. 아, 괜찮다고요? 네, 감사합니다.


영화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 가운데 음악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배우, 시나리오, 연출이 중점이라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잘 버무려 스크린 안에 구현해 낼 수 있을 때 비로써 하나의 예술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쉽지만 영화 음악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막말로 음악이 없어도 영화는 만들 수 있다. 그것도 훌륭한 영화. '에이, 음악 없는 영화는 앙꼬 없는 찐빵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삽입되어 있지 않다. 아주 잠깐 흐르긴 하나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한마디로 음악 영화나 뮤지컬 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 속 주요 구성요소들을 제치고 음악이 그 중심을 차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지껄이느냐. 영화음악은 엔니오 모리꼬네를 접하기 전과 후로 나뉘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내용들은 모리꼬네 형님을 알기 전의 어리석은 이야기일 뿐이다.


모리꼬네 형님은 뻔한 스토리와 무미건조한 영상미에도 감동을 불어넣는 신비스러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영화가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자면,

'하음, 이 영화 다소 따분한 걸'하며 하품을 하던 와중에도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다. '뭐야, 이건 반칙이라고! 음악이 미쳤잖아!'라고 생각될 쯤엔 나의 모든 신경세포들이 잔잔히 흐르는 음악의 파도를 따라 두둥실 실려간다. 터져버린 눈물 콧물이 입꼬리와 인중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들어오지만 현실을 자각할 수 없다. 이미 나의 몸뚱이와 자아는 시공간을 넘어 다른 차원을 유영하고 있다. 아름다운 선율의 도가니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퍼뜩 정신을 차려보려 해도 동공이 풀려 초점을 잡을 수가 없다. 결국 환상 동화와도 같이 떠오르는 옛 추억의 잔해들을 끼워 맞추며 '아, 역시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하고 깨어날 때쯤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다.


이처럼 모리꼬네 형님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스크린을 종횡무진 지배한다.


사실 잘 만든 영화음악이란 영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영상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만 만다. 영상을 압도해버릴 정도로 음악이 좋아버리면 그건 결코 좋은 영화음악이라 평할 수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영상 퀄리티에 맞는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라'처럼 들리기도 하니, 참 우스운 일이다.


나는 모리꼬네 형님의 음악이 흐르는 영화라면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을 맡던, 쿠엔틴 타란티노가 감독을 맡든 간에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라 칭해 왔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아직 보지 않고 아껴둔 그의 작품이 여럿 남아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그의 음악이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흐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인종과 성별과 시대를 넘나들며 모든 인류에게 감동을 선사해준 음악의 전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음악 천재. 대한민국 좁은 땅 서울 변두리에서 당신에 대한 글을 쓰며, 당신의 음악을 들으며, 당신의 넋을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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