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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관희 Sep 03. 2020

낚시의 손맛을 아십니까

여행


낚시의 '손맛'이란 어떤 느낌일까. 상상만으로도 하품이 쏟아지는 낚시를 경험하려 했던 건 단순히 손맛 때문이었다. 그놈의 손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낚시 좀 해봤다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하나같이 거만한 표정을 짓고선 말했다.


“그 짜릿함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 그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거야”


얄미운 주둥이를 한 대 때려버릴까 보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손맛이란,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 낚싯대로부터 손끝으로 전해지는 진동, 그리고 릴을 감았다 풀었다 반복하는 행위 끝에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찰나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오버해서 비유하자면 말 안 듣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어쩌면 "낚시의 손맛보단 역시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목줄을 타고 흐르는 손맛이 한층 더 맛깔스럽지"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궁금한 건 꼭 해보고자 하는 경험주의자로서 한동안 친한 형을 따라 낚시를 다녔다. 낚시 덕후인 형을 따라다니면 양동이째 물고기를 한가득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데 생각보다 한 마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봄, 여름이면 날씨가 화창하다가도 내가 낚싯대를 잡는 순간 비가 내렸다.

가을, 겨울이면 날씨가 선선하다가도 이내 강풍이 불어 닥쳤다.

물고기 좀 낚아 볼까, 하면 매번 미끼의 냄새를 맡은 비구름이 개미떼처럼 내 주위로 몰려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하늘은 매정했고 형은 사람 좋은 얼굴로 씩 웃었고 나는 매번 하늘과 형을 번갈아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물론 날씨가 잠잠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형! 걸렸어요!" 하면 낚시 바늘이 바위에 걸려서 낑낑대었고, "형! 이번엔 진짜 걸렸어요!" 하고 끌어올리면 이미 반토막이 난 갯지렁이의 초라한 흔적만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낚시와의 인연은 닿을 듯 닿지 않았다. 손맛은커녕 컵라면 국물로 입맛만 다시기 일쑤였으니, 이제는 손맛이고 나발이고 낚시라는 단어만 들어도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질 지경이었다.




한여름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가 기성을 부리던 어느 주말, 우리는 가까운 서해, 삼길포를 향해 차의 시동을 걸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형과 영화배우 진선규를 닮은 내 친구와 함께였다. 이번 계획은 낚시가 아닌 캠핑. 낚시라고 하면 극구 손사래 치는 나에게 형은 캠핑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미끼를 던졌다.


"첫날은 캠핑을 하고 둘째 날은 낚시를 하자"

"전 낚시는 안 해도 돼요, 아니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형은 사람 좋은 얼굴로 씩 웃으며 말했다.

"혹시 좌대 낚시라고 들어봤어? 바다 한가운데 낚시터를 설치한 개념이라고 보면 돼, 그곳이라면 너도 한 마리쯤은 잡을 수 있을 거야"


나는 형을 쏘아보며 매몰차게 대답했다.

"형, 그런 곳이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죠! 오호, 나도 드디어 손맛 좀 보는 건가"


뜨거운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2시간을 달려 삼길포에 도착했다. 차의 에어컨이 고장 나는 바람에 2시간 동안 지옥을 경험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끈적거렸고 젖은 팬티가 엉덩이에 자꾸만 달라붙어 떼어 내는데 애를 먹었다. 만약 누군가 차에서 내리는 우리의 모습을 봤다면 "쌌네, 쌌어"라며 혀를 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바다를 보니 좋았다. 찝찝했던 기분을 금세 날려버릴 정도로 바다의 날씨는 사뭇 달랐다.


바닷가 주변을 걸으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소금기 섞인 바다내음도 한껏 들이마셨다. 서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땀으로 흠뻑 젖은 팬티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었다. 무더위가 잠시 한걸음 뒤로 물러난 듯한 쾌적함이 느껴졌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배들을 보고 그 너머로 펼쳐진 푸른 물결을 보고 두둥실 떠올라 있는 하얀 구름을 보았다. 삼길포의 풍경은 메말랐던 심신을 적셔주는 안락한 오아시스 같았다.


평범하고 차분하고 정겨운,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순간. 그것은 바다가 부리는 마법의 시간이었다.


'인간이 바다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두 눈과 피부와 호흡으로 그리워하기 때문일 거야, 인간의 조상은 물고기니까' 유의 잡스런 상념을 떠올리며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순간을 품에 안고 싶다고 잠시 생각했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석양이 아련한 빛을 내며 서서히 저물었다. 이제는 밤을 맞이할 시간. 슬금슬금 캠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갈돌이 깔린 캠핑구역에 큼지막한 텐트를 쳤다. 조금 허기를 느껴 근처 회 센터에서 우럭을 사 왔다. 애피타이저로 대충 때울 심상이었는데 탱글탱글한 식감이 아무래도 술을 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회 한점 넘기고 소주 한잔 넘기고, 회 한점 넘기고 맥주 한잔 넘기고. 회가 달달한 건지 술이 달달한 건지 입에 넣는 대로 쑥쑥 넘어갔다.


쉴틈도 없이 숯에 불을 붙였다. 석쇠를 깔고 그 위에 두툼하게 썰은 돼지고기 목살을 올려주었다. 숯불 위의 목살은 주황빛 조명처럼 은은한 자태를 뽐냈다. 아름다운 빛깔에 매료되어 익어가는 목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쪼그려 앉아 있는 형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갈 꺼냈다. 은박지였다. 뭘 하려는 걸까 하고 보니, 은박지 안에 하양과 분홍이 조화를 이룬 기다란 삼겹살을 몇 점 가두는 중이었다. 그리곤 그대로 숯불 틈 사이로 끼워 넣었다.


"너네 이거 먹어보면 깜짝 놀란다"


셋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다며 형이 언젠가 꼭 한번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특제 삼겹살이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은 목살이 노릇노릇해지는 타이밍에 형은 한번 확인해볼까, 라며 숯불 틈에 끼워 놓은 두툼한 은박지를 꺼내 펼쳤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사이로 삼겹살이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환상적인 하모니가 침샘을 자극했다.

"와, 장난 아니다, 형 빨리 먹고 싶어요"


형은 인내심을 가지라는 손짓을 하고는 집게로 삼겹살을 집어서 목살 옆자리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한번 더 구워줘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어"


촤아~ 소리와 함께 윤기가 흐르는 삼겹살이 숯불 위에서 뽀얀 김을 내뿜었다. 실로 아름다운 맛이 느껴질 것만 같은 비주얼이었다. 삼겹살과 목살은 나란히 누워 있었고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과 추억은 앞다툼 없이 가지런히 흐르고 있었다.


나중에 합류하기로 한 일행이 도착했다. 우린 넷이 되었다. 셋도 좋지만 넷은 더 좋았다. 오랜 기다림에 굶주린 배를 매만지며 우선 목살을 한 점씩 집어 먹었다. 말을 잇지 못했다.

바닷가에, 숯불 위에, 잘 익은 돼지고기 목살. 말이 필요 없었다. 우린 감탄했고 배시시 웃기도 했고 서로의 술잔을 채워주기도 했다. 잠시 정적이 흐를 땐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기도 했다.


"아, 좋다 좋아"


게눈 감추듯 목살의 반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라며 서둘러 삼겹살을 자르기 시작했다. 특제 삼겹살의 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 친구가 먼저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와, 미쳤다 미쳤어"


나도 궁금해서 바로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미친 맛이었다. 혀 위에서 춤을 추던 그 맛과 식감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행복의 맛, 그 자체였다. 태어나서 먹어 본 삼겹살 중에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그 맛을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해달라고 요청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맛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 그건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거야.


술잔을 기울일수록 분위기에 취했다. 허리를 필 겸 잠시 몸을 일으켜 세우면 텐트 위로 솟아오른 달이 신비로운 빛을 발산했다. 짙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항구의 풍경이 달빛을 따라 하얗고 노랗게 채색되었다. 둥근달을 싣고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항구와 바다를 비롯한 모든 사물들이 얼마나 반짝거리던지, 좋았던 밤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밤이었다. 그야말로 완연한 여름밤이었다.



다음날 좌대낚시를 5시간가량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내가 낚싯대를 잡으니 거짓말 안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이내 강풍이 불어 닥쳤다. 하지만 날씨 탓을 할 순 없었다. 같은 조건에서도 옆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몇 마리씩 낚아 올렸으니까.

낚시는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맞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나와 낚시 사이엔 분명 뭔가가 있다고 느꼈다. 그날 같은 장소에서 한 마리 낚아 보겠다며 고군분투하던 형도, 손맛 좀 느껴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내 친구도 헛물만 켠 걸 보면 미스터리한 뭔가가 얽혀 있음에 틀림없다.


짐 정리를 하며 내 친구가 형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형님, 저희 어떻게 한 마리도 못 잡았을까요?"


형은 새삼스레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몰랐어? 관희랑 낚시 가면 절대 못 잡아, 나도 잡아본 기억이 없거든, 그나저나 관희는 이번에도 손맛을 못 봐서 어떡하냐"


나는 멀리서 손짓하는 바다에게 안녕을 고했다.

"에이 괜찮아요, 다음에 또 오면 되죠"


그때 나의 얼굴은 온 우주를 밝힐 만큼 환한 미소로 빛났을지도 모른다.


손맛이 뭔 대수인가요. 저는 만족합니다. 어젯밤, 그 매정한 바다로부터 바래지 않는 둥그런 보석을 낚아 올렸으니까요. 충청남도 서산, 삼길포항의 아름다운 밤을 잊지 못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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