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화양연화 3 - 꿈의 시공간, 2046
당신의 꿈 이상으로 당신 자신인 것도 없다.
-니체, 아침놀-
67폭동을 진압한 영국령 홍콩정부는 홍위병과 연계된 테러까지 있었던만큼 홍콩을 안정화시켜 중국본토보다 우월한 곳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러니 중국공산당 사회주의와의 체제경쟁이라는 맥락도 더해졌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정부패 일소와 빈부격차 해소에 나서는데, 이게 우리가 오늘날 인식하고 있는 서구화된 선진 홍콩의 시작이다. 제조업이 발달했던 홍콩은 80년대 들어 점차 금융, 무역으로 산업의 중심을 옮겼고 이게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탄생이기도 했다.
이주민이 모여들던 피난촌에서부터 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까지. 오늘날 노년기의 홍콩인이 있다면 그들도 현대 한국만큼의 상전벽해를 온 생애에 걸쳐 체감한 사람들이다.
이 황금기는 영국과도 다른, 중국도 아닌 홍콩이라는 독자적 정체성을 공고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시기도 끝나가고 있었으니... 구룡반도 북쪽 너머의, 홍콩시가의 배후지라 할 수 있는 신계지역의 반환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 도심지역은 영국이 영구보유할 수 있었으나, 신계지역은 별도 합의로 할양받은 지역으로 99년의 조차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농산물과 수자원의 원천이자 발전시설의 근거지인 신계를 반환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정세에 대한 불안으로 1980년대 초 홍콩은 금융/부동산의 자산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에 당시 대처 정부는 신계지역에 대한 점유를 더 연장할 생각으로 중국의 덩샤오핑과 협상에 나서지만 '일국양제'를 들고나온 덩샤오핑의 협상전략과 지지부진한 협상과정을 지켜보던 홍콩에 경제 불안정이 나타나면서 대처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반환에 합의하게 된다. 이것이 1984년 발표된 중영공동선언이다. 이제 영국령 홍콩의 시대는 1997년으로 끝날 운명이 된다.
누구든 지배하는 정부가 공동체 외에서 온 세력으로 완전히 교체된다 하면 불안감이 들게 되리라. 더구나 89년의 천안문 시위는 이런 홍콩인들의 불안한 정서에 절정을 찍게 한다. 자신이 살아온 곳이 수도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항의시위를 탱크로 진압하는 정권으로 머지 않아 '반환'될거라 생각하면 어떠할지. 그리고 우리가 아는 수많은 홍콩영화의 걸작들은 이 시기를 전후로 탄생한다. 홍콩영화에서 잘 보이는 흐릿한 초점과 노이즈로 가득차 흔들리는 화면은 여기서 기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두가 불안해하며 맞이한 97년 마침내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다. 이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캐나다로, 미국으로, 뉴질랜드로 이주했다.
그렇다면, 홍콩은 완전히 끝난 걸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애초에 홍콩은 독립한 별도의 국가였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온전히 영국일수도, 완전한 중국일수도 없다. 홍콩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독특한 울림은 여기에서 온다. 홍콩이라는 공간은, 홍콩인(hongkonger)이라는 정체성은 홍콩사의 궤적으로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써내려가며 꿈을 꾸는 것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마치 모운(양조위)이 려진(장만옥)을 만나며 무협소설을 써내려가며 꿈을 꿨던 것처럼.
려진과 가까워지며 모운은 단념했던 무협소설이라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같이 구상해보지 않을래요.'라는 말로 려진에게 자신의 꿈과 함께 하지 않겠느냐 제안한다. 둘은 함께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며 모운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영화를 본 사람이면 다들 기억에 남을, 집주인의 마작사건 때문에 둘은 한 방에 있던 걸 들킬뻔하기도 한다.
이후 글이 호평을 받고 지면을 받아 연재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모운의 이야기에 려진은 시간이 없을거라며 걱정하지만 모운은 글 쓸 장소를 찾았다고 말한다. 오기 더 편한 곳이며, 무엇보다도 들킬 염려도 없을 장소일 거라고. 이곳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꿈꾸고 사랑을 할 수 있는 곳이리라.
이런 모운의 말에 려진은 당신은 내가 없이도 잘만 쓰지 않느냐며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힌다. 아마도 금기의 관계란 그런 제안마저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일터다.
그곳은 욕망, 열정, 사랑의 빨간색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이 공간에 홀로 들어선 모운은 직장에도 결근을 하게되고 갑자기 전화연락이 안되는 상황에 초조해하던 려진은 전화 한통에 바로 이곳으로 달려간다. 이후로 둘은 본격적으로 함께 글을 지으며 이 곳에서 밀회를 나눈다. 이 장소는 잃어버린 꿈을 꾸며 연인과 함께 로맨스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과연 이곳은 어디인가.
2046. 딱 이 한 장면에서 나온다. 특별한 것 없는 숫자일까.
2046은 일국양제가 끝나는 해다. 97년 반환 이래 공식적으로 홍콩의 자율성을 보장하게 되어있는 50년의 시간은 이때 끝날 운명이다.
홍콩의 이 시간은, 그리고 화양연화의 이 공간은 잃어버린 꿈을 다시 꾸며 함께 노래하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홍콩이라면 영화를 만들것이고 두 인물이라면 이걸 보며 이따금씩 영화얘기도 나눴겠지.
둘의 로맨스는 금기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염려없이 자유롭게 연인일 수 있는 장소다. 자신의 꿈이 결근이라는 무책임한 일을 일으키고, 그 로맨스가 사회적 눈총을 받을 위험을 불러와도 이곳은 그걸 맘껏 느낄 수 있게 하는 곳이다. 홍콩이라는 꿈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그때까지는 모운과 려진처럼 이 곳에서 노래하고 글을 쓰고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최소한 2046년까지는. 화양연화를 찍던 당시의 왕가위는 그렇게 말하는듯하다.
그렇다면, 홍콩은 아직 꿈을 꿀 수 있을까. 그것이 운명 앞에 몰래 꿈꾸어질 수 있다 해도.
왕가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아예 '2046'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동안 왕가위가 찍었던 영화들의 후일담 성격에 가깝다.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의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등장한다. 앞선 영화들을 아우르는 속편격. 왕가위의 '명작'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의 영화는 아니다가 중론.
참고문헌
푸른 빛 블루, 홍콩의 싸움: 정체성의 관점에서, 슬로우뉴스 https://slownews.kr/73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