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화양연화 5
홍콩의 밤은 놀라웠다. 어느곳보다도 화려한 밤풍경이 진짜 홍콩이라는 평에 동감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바와 클럽이 붐비던 란콰이펑
조명으로 어우러진 센트럴의 빌딩들
아름다운 님을 그리는 가사인 사미인곡은 아무 맥락없이 그 자체로만 보면 꽤 괜찮은 연가(戀歌)이기도 하다.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깐 동안 생각을 말고 이 시름을 잊자 하니
마음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쳐 있으니
명의가 열명이 와도 이 병을 어찌하리
아아 내 병은 이 님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서 호랑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가는 데 족족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님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쫒아가려 하노라
- 정철, 사미인곡(思美人曲) 중-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병이 들거고 차라리 꽃향담은 나비가 되어 님의 옷에 옮아 쫓아가고 싶을 수도 있다. 역사적 배경 이런거 떼놓고 봐보자. 이건 사랑노래다. 마치 화양연화가 그 자체로 매우 세련되고 감각적인 로맨스 영화인 것처럼.
화양연화는 로맨스 영화로만 기억되고, 사미인곡은 충절의 노래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둘의 모티브는 같지 않을까. 로맨스와 나라에 대한 마음 둘이 겹쳐져 있는. 로맨스로 나라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하지만 기존의 이해방식에 따른다면, 우리는 그 둘을 각기 정 반대의 한쪽 편으로만 바라봐왔다.
앞선 글들에서 이야기했듯이 영화 화양연화는 홍콩 반환을 전후로 하는, 아름다웠던 홍콩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면 이건 연모의 마음으로 나라를 그리는 '사미인' 모티브라는 맥락에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화양연화를 로맨스 영화로'만' 기억하는 것은 사미인곡을 군주에 대한 충성심으로'만' 새기는 단선적인 이해만큼이나 협소한 시각 아닐까?
'홍콩'은 특정한 장소로서의 의미만은 아니다. 홍콩은 '영화'이기도 했다.
홍콩을 방문한다는 건 영화를 보러가는 거기도 하다.
나는 홍콩에 영화를 보러 간건가.
내가 홍콩에 느끼는 마음에 연심이 있다면, 그건 그 시절 홍콩'영화'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1966년 홍콩 장면에서 집주인이 려진에게 얘기하는 홍콩이 어수선하다는 말이나
모운이 옛 구씨의 집에서 방문했을 때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이가 홍콩은 난리통이니 누군들 떠나지 않겠느냐는 말이
마치 훨씬 훗날의 영화 화양연화 개봉시점이라 할 반환전후의 홍콩의 혼란상에 대한 말로도 들리는 것 같다.
여기에다 로맨스의 행간에 틈틈이 들어가 있는, 이별연습 후에 쓸쓸한 두 사람에게 울려퍼지는 노래 <화양적연화>나 캄보디아에서의 드골 장면 등에서도 영화의 그 근저에 깔려있는 옛 시절 홍콩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지나가버린 옛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진한 그리움이야말로 진짜 담겨 있는 정서이리라.
그곳을 나는 가득 즐기고 보았었다.
홍콩이 정말 그립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