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그 아름다운 님을 그리며(하)

홍콩의 화양연화 5

by 간로

香港的 花樣年華

홍콩의 화양연화 5

사미인思美人 - 홍콩, 그 아름다운 님을 그리며(하)



홍콩의 밤은 놀라웠다. 어느곳보다도 화려한 밤풍경이 진짜 홍콩이라는 평에 동감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거리인 네이선로드를 가면 이게 무슨 말인지 격하게 동의할 것이다.


바와 클럽이 붐비던 란콰이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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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가득했던 빅토리아 피크, 해가 지면 홍콩의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조명으로 어우러진 센트럴의 빌딩들

다른 곳에서는 보기힘든 독특한 매력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홍콩이었다.

이런 홍콩을 아름다운 이에 빗대어도 되지 않을까. 사실 반해버렸다.




아름다운 님을 그리는 가사인 사미인곡은 아무 맥락없이 그 자체로만 보면 꽤 괜찮은 연가(戀歌)이기도 하다.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깐 동안 생각을 말고 이 시름을 잊자 하니

마음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쳐 있으니

명의가 열명이 와도 이 병을 어찌하리

아아 내 병은 이 님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서 호랑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가는 데 족족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님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쫒아가려 하노라


- 정철, 사미인곡(思美人曲) 중-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병이 들거고 차라리 꽃향담은 나비가 되어 님의 옷에 옮아 쫓아가고 싶을 수도 있다. 역사적 배경 이런거 떼놓고 봐보자. 이건 사랑노래다. 마치 화양연화가 그 자체로 매우 세련되고 감각적인 로맨스 영화인 것처럼.


화양연화는 로맨스 영화로만 기억되고, 사미인곡은 충절의 노래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둘의 모티브는 같지 않을까. 로맨스와 나라에 대한 마음 둘이 겹쳐져 있는. 로맨스로 나라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하지만 기존의 이해방식에 따른다면, 우리는 그 둘을 각기 정 반대의 한쪽 편으로만 바라봐왔다.


앞선 글들에서 이야기했듯이 영화 화양연화는 홍콩 반환을 전후로 하는, 아름다웠던 홍콩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면 이건 연모의 마음으로 나라를 그리는 '사미인' 모티브라는 맥락에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화양연화를 로맨스 영화로'만' 기억하는 것은 사미인곡을 군주에 대한 충성심으로'만' 새기는 단선적인 이해만큼이나 협소한 시각 아닐까?




'홍콩'은 특정한 장소로서의 의미만은 아니다. 홍콩은 '영화'이기도 했다.

홍콩을 방문한다는 건 영화를 보러가는 거기도 하다.

img1.daumcdn.jpg 란터우 섬에 도착해서 무지무지 긴 케이블카를 타다 내리면 보이는 광경. <무간도>에 나오던 티안탄 좌불이 보인다.
img1.daumcdn.jpg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중경삼림>
20181204_192451.jpg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롱코트를 걸치고 등장하던 그곳
img1.daumcdn.jpg 쿵푸의 그 제스처. 성룡과 홍금보와 이연걸이 나오던 무수한 영화들.
img1.daumcdn.jpg 여기에 물론 이소룡을 빼놓을 순 없지.

나는 홍콩에 영화를 보러 간건가.

내가 홍콩에 느끼는 마음에 연심이 있다면, 그건 그 시절 홍콩'영화'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사미인이나 화양연화나 모두 나라에 대한 마음을 님에 대한 연심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한다면, 화양연화는 홍콩의 '사미인'인지도 모른다. 반환 이전의 홍콩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모운과 려진의 옛 로맨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그려낸 영화라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영화의 정서가 응축된 시점은 아름다운 시절이던 1962년이 아니라 그게 모두 지나가버린 1966년이 나오는 영화 말엽이다.


그래서 1966년 홍콩 장면에서 집주인이 려진에게 얘기하는 홍콩이 어수선하다는 말이나

img1.daumcdn.png 려진은 모운과의 옛 로맨스가 있던 옛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집주인은 저런 말을 한다.

모운이 옛 구씨의 집에서 방문했을 때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이가 홍콩은 난리통이니 누군들 떠나지 않겠느냐는 말이

img1.daumcdn.png 구씨가 떠난 집에서 살던 이는 옛일을 추억하며 방문한 모운과 떠나버린 구씨에 대해 얘기하며 위와 같이 말한다.

마치 훨씬 훗날의 영화 화양연화 개봉시점이라 할 반환전후의 홍콩의 혼란상에 대한 말로도 들리는 것 같다.


여기에다 로맨스의 행간에 틈틈이 들어가 있는, 이별연습 후에 쓸쓸한 두 사람에게 울려퍼지는 노래 <화양적연화>나 캄보디아에서의 드골 장면 등에서도 영화의 그 근저에 깔려있는 옛 시절 홍콩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지나가버린 옛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진한 그리움이야말로 진짜 담겨 있는 정서이리라.


화양연화의 주된 내용은 도리어 옛 시절, 그 아름다웠던 홍콩에 대한 연모가 진짜 이야기라 해야 하지 않을지.




그곳을 나는 가득 즐기고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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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움직임에 뭔가 마음이 묻어나온다.

홍콩이 정말 그립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있기를.



命則處幽吾將罷兮 운명이라면 그윽한 곳에 처하며 장차 마치며

願及白日之未暮 저 해가 저물지 않기를 바랄 뿐이로다.

獨焭焭而南行兮 홀로 외로이 남녘으로 가면서

思彭咸之故也 팽함*의 옛 일 그리워하노라.

- 굴원(屈原), 사미인(思美人) 중-

*팽함: 상(商)나라[은(殷)나라]의 충신으로, 임금에게 직언했으나 이를 듣지 않자,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초사>에 실려있는 다른 시, '이소(離騷)'에서 굴원은 나의 말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며 절망하면서 팽함을 따와 그처럼 죽어야겠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훗날 굴원의 충언을 듣지않던 초나라의 국운이 기울자, 굴원은 정말 돌을 가슴에 안고 멱라강에 스스로 뛰어들었는데, 명절인 '단오'는 굴원의 이 일을 기리면서 시작되었다.



참고문헌


굴원 외, 권용호 역, <초사>,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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