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욕망의 변주(하)

홍콩의 화양연화 7

by 간로

香港的 花樣年華

홍콩의 화양연화 7

- 질서와 욕망의 변주(하) -



자기[己]를 이겨내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

(…) 예가 아니면 보지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공자, <논어>-



앞서 말했듯 역할극으로 시작된 모운과 려진의 만남에서 두번째 역할극은 모운이 글을 쓰는 장소, 2046호에서 일어난다. 함께 글을 쓰며 만난 밀회에서 많이 가까워진 두 사람은 려진이 남편에게 불륜을 추궁하는 걸 미리 연기해본다. 앞서의 첫째 역할극이 해명/규명을 위한, 근본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향한 해석의 시도였다면 2046호에서의 역할극은 ‘연습’에 가깝다.

‘연습’은 능하고 익숙하지 않은 걸 해볼 때 필요하다. 그렇게 보면, 려진은 그런 추궁에 서툴 것 같은 여자이긴 하다. 실제로 그들의 연기에서조차 려진은 엄중하게 추궁하는 것에 실패한다. 자신의 남편을 연기한 모운의 어깨 한켠을 살짝 치는것에 그친 려진에 대해서 모운은 그렇게 약하게 때리는게 어디있느냐며 서투름을 지적하고, 다시금 연습에 나서보길 권한다.


이어진 재차의 연습, 모운은 연기를 통해 곧바로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있음을 단번에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려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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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터뜨린다.

려진은 남편이 실제로 그렇게 담담히 불륜을 인정할 상황이 갑자기 다가와서 그러는 것일까? 둘의 로맨스가 펼쳐지는 새빨간 밀회의 장소임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욕망의 공간, 그곳에서 욕망의 상대방은 남편이 아닐 것이다. 바로 자기 앞의 모운. 이 두번째 역할극에서 모운이 다른 여자가 있다는 말은 한 차원에서는 려진의 남편의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운 스스로의 말이기도 하다. 다른 여자, 려진 당신말고 부인이 있어요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이 말을 결혼질서라는 범주를 써서 옮겨보자면 이렇다. 나는 사회적인 질서 하에서 공인받은 관계인 결혼, 다른 여자인 부인이 있어요.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질서하에서 난 당신말고 부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할수는 없을 거에요. 이게 순간 려진이 마음 한켠에 스쳐지나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 울음은 아마도 이 관계의 운명[이별]을 마주하고나서 느끼는 그 감정일 것이다.

그렇다, 그들이 아무리 다시금 결혼 이전의 개인이었을 때처럼 노래도 부르고 문화예술을 즐기며 무협소설을 함께 써내려간다 하더라도 그들의 밖에는 사회질서라는 엄중한 현실[결혼]이 그들을 규정짓고 있다. 결국 그들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부인인 것이다. 이 사실을 려진은 자각한 것이다. 려진은 아마 최초로 그들 관계의 운명[헤어짐]을 느낀 것이기도 하리라. 그리고 그 운명은 사회질서가 부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역할극은 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상대방을 상대로 이루어진게 된다. 남편이 아니라 자기 바로 앞의 모운을 향한.

여기서 연기의 인물과 실제 인물은 겹쳐지고 이제 역할극은 상대의 남편/부인이 아니라 실제 인물인 모운, 려진 스스로로 전환된다.

마지막 역할극이 그러하다.


둘의 관계는 주변 사람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시선과 마주한다. 려진은 이런 사회에 대해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길 항상 주저하는 여자다. 이런 여자에게 집주인의 지적이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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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이 잦다며 결혼생활에 충실하게 행동하라는 집주인의 지적은 위 <논어>에서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로 번안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이기적 욕망[己]을 이겨내고 사회적 질서인 예[禮]로 돌아가라.


역시나 려진은 이후로 모운과의 만남을 멀리하고 다시금 결혼한 부인이라는 사회적 질서에 따르는 태도를 취한다. 원래처럼 집에 머물며 집주인의 행사에 끼기도 하고. 욕망보다는 사회적 질서에 다시 따라가려 한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그렇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시는 60년대 홍콩이고 이웃이 얼마든지 서로의 행실을 지적할 수도 있는 엄격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특히 불륜같은 문제에서야 더더욱.

[엄중한 사회적 분위기가 억누른 만큼이나 만연한 개인의 욕망도 여기저기서 내비쳐진다. 당장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불륜은 주인공을 포함해 3커플이나 등장한다. 주인공의 남편/부인에다가 려진의 사장도 부인 외의 다른 여자를 몰래 만나는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에 사창가를 드나드는 모운의 친구인 아병의 모습까지도. 사회적 질서가 강고한만큼 강렬한 개인의 욕망도 그 질서의 틈을 비집는다.]


모운은 마침내 이 관계의 운명에 대해서 자각한듯 하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끝을 두고 연습에 들어간다. 둘의 욕망을 끝내고 엄중한 질서의 세계로 귀환해야 할 그 운명 말이다. 이별연습을 해봅시다. 혹은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욕망[개인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혼이라는 사회질서[사회]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어. 그게 어떠할지 아직 알 수 없으니 미리 연습을 해보자며. 여기서의 역할극이란 아직 알 수 없는 사태를 미리 체험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도.


그리고 마지막, 이별연습이 나온다. 이들은 더 이상 상대의 배우자를 연기하지 않는다.


려진은 그들의 관계의 끝을 추체험하고나서야 비로소 이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시간임을 비로소 온몸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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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은 둘의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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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이별에 대한 연습은 실제 이별에 대해 무너져내리는 마음으로 터져나온다.[로맨스가 시작되던 처음과 이별연습을 하던 끝에서 둘의 복장이 같다.]

img1.daumcdn.png 질서를 뒤흔들 욕망의 세계는 사회로부터 감금되어 있어야만 한다. 창살그림자를 보라.

요즘 세상에 그 흔한 키스신도 하나 없는 로맨스 영화임에도 어느 영화보다도 화양연화가 로맨틱한 이유는 이 팽팽한 긴장감과 끝이라는 운명앞에서 마침내 터져나오는 이 감정 때문일 것이다.

이후 려진은 정말 과감하게도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로 개인으로서의 자기 욕망과 사랑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놓고 드러낸다.

어차피 끝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끝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더욱 소중하겠는가. 이 지나가버린 시절이 아름다운 화양연화임을 둘도 뚜렷이 자각한다. 그 끝을 추체험하고 나서야.


둘의 관계는 결혼이라는 사회질서와 로맨스라는 개인의 욕망 사이의 팽팽한 줄타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려진 때문에라도 싱가포르로 떠나려 하는 모운의 선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홍콩의 현실은 그런 욕망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려진의 말처럼 그들은 희망이 없다. 홍콩이라는 곳은 욕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질서에 따를 운명이니까.


국제질서 하에서 홍콩이라는 단위는 스스로의 욕망대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탄생부터가 그러했으니까. 모운과 려진이 결코 이뤄질 수 없고 질서로 귀환해야만 했듯이 홍콩의 운명이란 결국 그 엄중한 질서에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감정을 가지고 그 곳을 바라보게 한다. 또 그렇기에 이전의 홍콩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를 비로소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려진의 북받쳐 오르는 눈물처럼 말이다.

img1.daumcdn.jpg 센트럴에서 바다쪽으로 나오면 있는 골든보히니아 광장.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주로 중국본토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오성홍기가 휘날리고 있다.

홍콩의 반환과 그 홍콩의 끝일 2046이라는 운명은 이 모운과 려진의 헤어질 운명과도 닮아있다. 그렇지만 모운을 통해 왕가위는 이렇게도 말하는듯하다. 번민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만 괴로워만 말고 일단 이 상황에서 내가 이전부터 즐겨왔던걸 해가자. 모운이 무협소설을 쓰듯, 그렇게 영화를…



여담 - 안녕, 언젠가


이재한 감독의 <사요나라 이츠카>에는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와 <드라이브 마이카>의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나온다. 남녀주인공은 모두 일본인이지만 둘의 욕망의 장소는 일본 밖의 태국이다. 남자 주인공에게는 일본에 두고온 약혼녀가 있다. 그리고 전통적 일본사회가 그러하듯 그 약혼은 집안의 정혼에 의한 것이다. 일본은 결혼이라는 사회질서의 세계이고, 개인적인 욕망은 그 사회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회에서 벗어난 열정과 욕망이란 일본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듯 하다. 여기서 묘사된 일본은 사회에 온전히 박제되어 욕망이라는 개인성을 잃어버린 사람들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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