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다시 가기로 한거에 큰 계기가 있진 않았다. 문득 광고를 타고들어간 검색에서 호텔비가 말도 안되게 쌌다는 거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상하게 그때부터 그곳에 남아있는 무언가를 보러가야겠다는 마음이 덮여지지 않았다. 이전에 그곳서 느끼던 무언가가 온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랄까. 가기로 하고서 걱정을 안했던건 아니다만 생각보다 안전할거란 확신이 있었다. 시위상황이야 언론보도로도 잔뜩 전해지고 있었지만, 국내언론의 해외보도야 항상 논조가 일천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이전 방문에서 안면을 텄던 현지 거주 한인과 이야기도 해보고, 하다못해 트위치서 당시 시위상황을 생중계하던 홍콩인 스트리머한테 챗으로 체감 여건을 캐물어보기도 했었다.
현지에 지내는 어떤 이든 일단 hkmap.live라는 곳을 내게 알려줘왔다. 당시 여기선 시위 현황이 실시간으로 지도상에 업데이트되었던지라 제반상황의 추이를 지켜볼 수 있었는데, 시위라는건 무작위한 혼돈이 아니라 일정한 진폭을 가지고 주기로 감응하는 패턴의 현상이었다. 몇달간 본바로는 내가 재방문을 계획하던 시기가 시위의 주기상 잠시 소강기로 진입하고 있다고 느껴졌었다.(결과적으로 그런 내 판단은 옳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몇주후 시위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다시 격화되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더 늦기전 무언가를 반드시 만나러 가야하기라도 하는것처럼 서둘러.
이전의 첫방문 때와는 달리 첵랍콕 공항에서부터 시가로 들어가는 버스정류장은 혼잡한 줄로 붐비지 않았다. 낯섦이 다가왔다. 한적함 속에서 센트럴까지 차없이 뻥 뚫린 길을 따라 순식간에 도착한 호텔에 짐을 풀고선 저녁에 시가지로 걸었다. 역시나 이상했다. 사람이 없어. 인적 드문 홍콩의 밤거리라니 괴이했다. 아무래도 지난 여행 때 방문했던 곳은 어떨까싶어 구룡반도로 건너가보기로 했다.
야경명소로 이름난 침사추이 쪽 번화가여도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전 방문에선 낮이든 저녁이든 사람으로 미어터지게 붐볐다. 지난번 기억으로 새겨져있던 광경이 이곳과 겹쳐지지 않았다. 홍콩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광경인지 알거다. 이건 약간이라도 충격이었다.
그제서야 이번에 방문한 홍콩에서는 이전엔 잘 느껴지지 않던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곳이 사라져간다는 느낌이랄까. 이젠 다시 방문해도 예전의 그 느낌이 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첫 여행 때의 여럿 광경이 흐릿하게 초점없는 화면처럼 명멸하듯 사라지는 장면으로 차올라왔다. 어쩌면 나는 홍콩의 마지막 황혼을 보고 있는건 아닐까.
홍콩이란 무얼까.
홍콩은 단순히 구룡반도와 홍콩섬이라는 지리적 좌표를 가리키는 범주에 그치진 않는다. 구룡반도를 통해 중국 본토에 맞닿아 연결되어있지만 엄정한 집회 감시와 처벌로 관리되고 있는 본토와는 다르게 그곳선 언론과 출판의 자유의 공간이랄게 있었고 위정자양하는 윗사람들내라도 안주거리가 되어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다. 중국이야 해외 웹서비스를 차단하는 방화벽과 검열로 온라인 만리장성을 쌓아놓은지 오래지만 홍콩에선 구글도 유튜브도 해외 외신도 닫힌 적은 없었다. 본토에서야 터부시되는 89년 천안문에서의 일도 홍콩에서는 얼마든지 이야기되고 공유되고 기억되어와서 해마다 추모집회까지 열리곤 했다. 우리의 홍콩에 대한 기억을 만든 홍콩의 영화나 노래도 그런 자유의 공간과 유리된 산물이 아니었다. 명작으로 남을 영화들도 거기서야 가능했다. 같은 대륙에 면한 중화권이지만 본토 중국과는 대비되는 그런 특수성의 공간이 곧 홍콩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중국 본토에선 절대 있을 수 없을 광경, 홍콩 중문대에 있던 민주주의 여신상. 현 홍콩당국은 지난 2021년 12월 23일 이 청동상을 기습철거했다.
그런데 그 공간이 서서히 닫혀간다면? 그리고, 종국에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건 아닐까.
다음날, 다소 어색한 조우도 있었다.
센트럴에서 좀 위로 올라가면 바로 바다가 맞닿은 광장 하나가 나온다. 이번 여행서 당시 나는 그곳이 어떤데인지도 모른 체로 무작정 이번에는 센트럴 쪽에서 바다를 한번 봐보자 해서 호텔에서부터 그냥 정처없이 걸었다.
여기도 한적하겠다 했는데 왠걸 버스들이 잔뜩 주차돼 있었고 당시 이 시국이다 싶은 상황에서는 드물겠다 싶은 단체관광객들마저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중국인들인거 같았다. 안전하다고 얼마든지 가라고 독려라도 받았을까.
골든 보히니아 광장에서 바라본 홍콩. 구룡반도 쪽의 광경이다.
나는 드문드문히 있던 단체관광객들만 빼면 평온했던 이곳에서 잠시 바다구경을 하다 폰카로나마 사진을 몇장 찍었다. 혼자 왔어도 할건하자. 혼자 여행올 때 제일 아쉬운 건 나 스스로를 사진에 담기는 다소 난감할 때가 많다는거다. 셀카봉이 없고서야. 그게 있다손 치더라도 그걸로 찍어서 나올 구도는 한정되는데 그게 영 마음에 차야 말이지. 그래서 부득불 주위 사람, 웬만하면 현지인일 법한 사람을 잡아 부탁을 걸어보는 편인데 잠시 대화라도 터볼까 싶어서다. 이런거는 커플, 그 중에도 남자한테 부탁을 해야 성의있게 잘 해준다. 누구라도 자기 여자 앞에선 잘 보이고 싶어하는게 남자연하고자 하는 존재들의 인지상정. 역시나 근처의 커플 중에 검은 머리를 한 20대 남짓의 한 청년에게 말을 걸고 폰카를 건넸다.
"원, 투, 쓰리~"
말은 달라도, 사진 찍는 타이밍 재는 템포는 어딜가든 비슷하다. 나는 연신 땡큐땡큐를 남발하고는 대화를 이어갈 겸 물었다.
"웨아아유프롬?"(넌 어디 출신이니?)
"아~ 아임 프롬 히얼."(아 나는 여기 사람이야.)
홍콩인인가? 근데 어째 말하는 분위기가 여기 사람이 아닌데. 나는 한마디 더 붙여봤다.
"댄, 아 유 로컬?"(그럼, 넌 여기 현지인인거야?)
"—노우."
"......"
그 사람이 나의 그 물음에 흠칫하며 답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색한 그 표정의 얼굴. 나도 그랬고. 서로 대화가 이어지기 힘든 이상한 침묵...
그렇다, 여기서 왔지만 로컬은 아닌 사람. 중국인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홍콩도 중국이고 나는 여기 출신인거다. 하지만 여기서 현지인으로 살아온 건 아니니 차마 로컬이라 할 수는 없는거고. “아임 프롬 히얼"의 '히얼'과 "아 유 로컬?”의 '로컬' 사이의 간극과 울림은 본토인과 홍콩인이 아닌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에도 있던 것인지.
옛 홍콩에 대한 감정을 담고 온 나도, 여기를 당연히 중국이라 생각하는 본토인도, 서로 어색할 밖에.
나중에야 나는 그곳이 홍콩반환을 기념하여 지어진 골든보히니아 광장이란 데임을 알았다. 옛 홍콩에는 없던 곳인데, 홍콩반환을 기념하여 지어진 곳이라서라더라. 그래서 중국 본토인들이 그토록 많았던 것이고. 그들에게는 홍콩내에 지어진, 위대한 중국을 회복해간다는 기념물일테니까.
위대한 중국의 회복과 옛 홍콩의 영속은 모두 과거로 돌아가자는 외침일테지만 한쪽이 커질수록 다른쪽은 작아질수밖에 없는 오묘한 복고(復古) 간 조응일 수밖에 없는건가.
어색한 조우가 끝나고, 나는 그곳을 떠나며 문득 반환후 이뤄진 수많은 홍콩인들의 해외 이주와, 또한 홍콩에 기회를 찾아 본토에서 이곳으로 이주왔을 수많을 사람이 생각나면서, 나중의 홍콩은 예전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왔던 '로컬'이 다 떠나고 이곳을 '히얼'이라고 불렀을 사람으로만 가득차게 되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 이주이든 강요된 교육정책이든 '홍콩'이란 공간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고 잊혀져 간다면? 그러면 홍콩이란 공간은 정말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로컬 홍콩인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비어있는거나 마찬가지라고 해야지 않나.
이윽고 홍콩은 고요하고 우아하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옛 사원처럼 버려져 텅 비어버리는건 아닐까. 그리고, 종국에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건 아닐까. 2046, 애초에 그럴 운명이었는가.
앙코르와트처럼?
왕가위 감독, 설마 당신은 이걸 홍콩의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찍은게요...
이번에 갔던 때와 달리 내 첫 홍콩여행은 계기가 처음부터 뚜렷했다. <중경삼림>. 나만이 아니라 많이들 그럴거다. 그래서 일부러 숙소도 거기 나오던 중경빌딩 건너편에 잡아놓고 돌아다녔다. 환전도 일부러 구경할겸 중경빌딩 들어가서 훑어보다가 한 곳을 찾아서 했다.
<중경삼림>에 취해서 홍콩 간 사람들은 알거다. 도처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듯 들썩여진다. 작중에도 나온 왕페이가 <夢中人>으로 번안해 부른, Cranberries의 <Dreams>. 아무 거리낌없이 밖에 내기는 힘든, 다소 유치하다 싶기까지 한 내 경험을 요렇게 고백해본다.
그래서 홍콩이란 공간은 내게, 영화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홍콩 영화를 보며 청춘기를 보낸 이 한국의 이 머스마는 몇년 후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 앞에 기다리며 서있던 줄에서 지금 이 시대에 K팝과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는, 홍콩에서 왔다는 여학생과 너네가 최고라며 그때의 홍콩과 지금의 한국을 두고 논쟁 아닌 논쟁을 해보게까지 되지만.
하지만 이번의 여행은 내 머리 속에 노래가 울려퍼지진 않았다.
이전과는 달라진 여러 광경들이 눈가에 들어올수록 첫 여행때의 홍콩이 그 자리에 중첩되고 기억은 증폭되었다. 난 분명히 지금의 홍콩거리를 걷고 있는데 나의 시야는 지난 여행의 광경을 멀리 훑으며 찾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만났었던 거다. 처음 맛보던 홍콩의 음식, 바글바글대던 떠들썩한 밤거리, 마시며 광둥어와 영어를 섞어 머라머라 떠들어대던 사람들, 길거리 어딜가나 은은히 울려퍼지던 노래, 그리고 도처에 보이던 영화의 흔적들.
그리고 그게 지나가 버린 지금에야 모운과 려진이 만나던 마지막에야 깨달은 것처럼 그때가 홍콩의 꽃다운 옛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였나보다 하는것이었다.
그제서야 나에게 영화 <화양연화>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로맨스를 넘어선 어떤 의미로.
저 진흙으로 봉해진 말 자체가 곧 영화 <화양연화>다. 자기지시적 쇼트.
기실 영화 <화양연화> 자체가 앙코르와트서 진흙으로 봉해놓은 저 말과 같은 것이다. 과거에 대한 나의 기억과 회한을 담아 아무도 없이 버려진 옛사원 돌기둥에 남몰래 속삭인다. 거기다 그게 혹시라도 밖에 새어나올까, 진흙으로 봉한다. 옛 홍콩을 반추하는 회한을 로맨스로 꾹꾹 담았는데 그럼에도 여러 의외의 컷에서 그게 삐져나오고 있다. 마치 주의깊은 이에겐 저 봉해진 말이 영화의 아름다운 로맨스 사이로 울리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20세기의 아름답던 홍콩의 '화양연화'는 그렇게 21세기의 로맨스 영화 <화양연화>가 된걸까.
어느쪽이든 불멸로 남겠지만...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시위로 혼란스러워 보이던 홍콩을 떠나며 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기가 불멸하는 과거로만 남진 않길, 이곳에 미래가 있기를... 마음 한켠에 진심을 담아 기원했다.
홍콩이 사라지지 않고 여기에 있길.
그리고 옛 홍콩을 떠올리며 그 모든 지난 것들에 대한 감상을 담아 글을 하나 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