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더운 날씨와 뜨거운 햇빛 탓에 바깥 활동은 최대한 늦게 하려고 하는 편이다. 자연스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하고 싶던 인터넷을 실컷, 정말 원 없이 한다. 웹툰, 뉴스 기사, 브런치 글, SNS, 유튜브까지. 점점 이 짓도 지친다.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 시간이 아까워진다. 그래, 뭔가 생산적인 걸 해야 해.
돈은 정직하게 땀으로 벌어야 한다. 옛 말이다. 랜선의 시대이자 크리에이터의 시대다. 일한 만큼과 비례하여 돈을 버는 게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아이디어와 재능이 있으면 훨씬 큰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다.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그래서 걱정이 더 커진다. 나는 뭘 해야 하지. 뭘 할 수 있지. 내 머릿속의 회로들이 꼬이고 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전면 재정립되고 있다. 도태되지 않고 있다.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겠지!
지금 쓰고 있는 이런 글로 돈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역시나 쉽지 않다. 애플리케이션 같은 걸 만들어 볼까. 어릴 때 홈페이지 만들고, 포토샵으로 영상 꾸미고 이런 것들에 꽤 빠져서 지냈기 때문에 적성에 잘 맞을지도 모른다. 일단 코딩을 공부해 보자고 다짐한다.
근데 배우고 나면 어떤 앱을 만들어야 하지? 끝까지 배우기는 할까?
현실로 돌아간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해 왔던, 내가 잘하는 ‘나의 일’을 하겠지.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돌아가야 할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일한 만큼 보상이 따라온다는 게 최고의 장점인 나의 일인데, 반대로 좀 더 여유 있게 살려면 그만큼 돈을 못 번다는 게 싫다. 불로소득 하고 싶다.
‘나의 일’을 하며 랜선 시대에 발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때부터 삼국지에 빠져 살았고, 지금도 역사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세계사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기에, 여행을 하면서 직접 보고 들은 것들에 각국의 역사를 접목시키지 못하는 게 내내 아쉬웠다.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고, 문화재(대부분 건축물)를 이해하지 못한 채 외관만 봐야 하는 게 정말 안타까웠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 준비해보고 있는 게 있다. 작은 것부터, 그리고 익숙한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준비하는 과정이 싫지 않다. 애초에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이라 억지로 공부하는 느낌이 없다. 결과물이 다른 이들에게도 유용하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말로 내가 관심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좋겠다. 바로 떠오르는 건 역시 축구다.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많이 좋아한다. 중증이다. 축구를 하며 돈도 벌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때 좀 더 고집을 부려 축구 선수를 시켜 달라고 했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성공 여부를 떠나서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는 있을까. 후회는 없을까. 오히려 축구를 원망하며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어 있진 않을까.
이제 축구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다. 평생에 걸쳐 몸 관리를 해 온 선수들도 은퇴를 하는 그런 나이다. 아직도 K리그 최고의 팀에서 뛰고 있는 대박이 아빠가 새삼 존경스럽다.
꼭 축구를 직접 할 필요는 없다. 지도자가 되어 가르칠 수도 있다. 행정가나 에이전트가 되어 축구 시장에 관여할 수도 있다. 일한다는 명목으로 맨날 축구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다들 늦었다고 할 테지만, 오히려 외국에선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낮고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축구 이론도 어느 정도 미리 공부해야 한다. 실습을 해볼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열심히 준비한 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스페인에 가서 1년 살다 오는 걸 계획한다. 잘 되면 그곳에 눌러앉을 수도 있다.
언어, 취업, 인종차별 등 현실은 생각보다 잔혹할 것이다. 그래도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달려봐도 괜찮지 않을까. 평생 하고 싶던 일이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인데.
조금은 소름이 돋는다. 내가 아는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부터 이런 류의 장황하고 뜬구름 잡는 생각들을 자주 해 왔다. 축구 선수, 감독, 건물주, 국회의원, 대통령 등등 여러 사람이 되어 보았다.
하지만 그저 망상에 불과했고 실행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망상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근데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기대도 든다.
경험해 본 적 있는 감정과 상황이다. 군대 전역을 앞두고 있을 때 이러했다. 현실로 돌아가는 게 두렵지만, 돌아가서 하고 싶은 것들이 기다려진다. 이 여행을 끝내는 게 아쉽지만, 새로운 여행이 기대된다.
내 인생이지만 나 혼자 살 수는 없다. 하고 싶은 게 있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기다리고 있는 일이 있지만 기다려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많은 이해관계들이 버겁진 않다. 지금까지도 잘해 왔고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 보면 새삼 실감이 난다.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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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