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브런치북을 발행한 후, 두 번째 책의 글감을 찾다가 고뇌에 빠져버렸다. 솔직한 내용을 담으면서도 연재가 가능할 정도로 풀 만한 '썰'이 있으면서도,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작은 감동을 드릴 수 있는 글감이 무엇이 있을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이토록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스스로 자책하며 고민하던 중, 남편에게 넌지시 아이디어를 물었다.
"장모님 이야기를 써봐. 쓸 이야기 많을걸?"
그래, 엄마 이야기.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치트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까? 엄마와 나의 이야기가 있을까? 무엇을 써야 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엄마와의 추억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러 감정이 스쳤다. 엄격하고 강인하다. 똑 부러지고 대단하다. 가끔은 안쓰럽고 불쌍하다. 항상 그립고 보고싶다. 언제나 사랑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동시에 귀찮기도 하다.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다양한 단어들이 '엄마'라는 이름에 얽혀 있어서 그녀와의 이야기로 브런치 연재북을 쓰고자 마음 먹었을 때에는 소재가 풍부해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을 줄로 알았다. 그런데 웬걸. 그 감정들이 녹아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니 쉽지가 않았다. 분명히 엄마와의 추억이 많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쓰려는 것 뿐인데 그럴 듯 한 에피소드가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는 놔뚜라족'이라는(내 맘에 꽤 드는) 제목과 첫 번째 글을 작성한 이후,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이유를 한참 동안 고민했다.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연재북을 발행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으로 글을 풀어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이 마음이, 엄마와의 추억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데, 무엇이 문제일까. 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숨 쉬듯 나의 일상에 녹아버린 이야기와 감정들' 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항상 내 곁에 있는 사람. 언제나 감사하지만 어쩌면 모든 것이 당연한 사람. 익숙함은 사라져야 진가를 발휘하는 법. 그것이 존재할 때에는 짙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은 너무나 당연해서 형상 없는 바람 같았던 것이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매일 밥 먹는 것을 꽤 장문의 글로 쓰기 어려운 것처럼, 엄마는너무나 익숙해서,잠깐동안 내 머릿속을 스친 다음 홀연히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엄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안쓰러움과 감사함이다. 한 번은 엄마 옆에 서서 어깨를 둘러보았는데, 어려서는 단단해 보이기만 했던 엄마가 생각보다 작고 야위었음을 단번에 느꼈다. 그럴 때면 저 작은 몸에서 어찌 단단한 에너지가 나와서 가정을 이끌어가고, 모든 위험 요소들을 차단할 수 있었는지 대단하면서도 안쓰럽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자식 둘 낳고 살림해가며 양가 부모님까지 모두를 뒷바라지하고, 틈틈이 반찬값이라도 벌어 들이려고 애쓰던 하루하루. 그 과정에서는 분명 유쾌하지 않은 숱한 일들이 그녀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정면 돌파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을 겪어내면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잃지 않은 엄마의 모습은 무척 대단하다.
여전히 꿈 많고 명랑한 사람.
이웃과 하나라도 더 나눠 먹으려는 정 넘치는 사람.
본인 입에 들어갈 것 아끼어 자식들에게 건네는사람.
시련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당당히 헤쳐나간 사람.
그리고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해 줄 사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쓴 뒤, 엄마의 삶과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작은 거인 같은놔뚜라족우리 엄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어쩌면 비슷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