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지 30년이 더 되었다. 부모님이 결혼하신 그 해에 내가 태어났으니, 내 나이가 곧 부모님의 결혼 연수와 같다. 앞으로 함께 할 날이 더욱 많은 두 분이지만, 그분들이 함께해 온 세월을 생각하면 문득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모님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구석이 많은 분들이다. 두 분 다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스타일이지만, 성격 면에서는 많이 다르다. 아빠는 온화하고 완곡한 반면, 엄마는 직설적이고 때로는 차가운 면이 있는데, 대화 스타일에서 특히나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곤 했다. 어려서는 이 차이 때문에 두 분이 마치 물과 기름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쉽게 섞이지 않는 성격들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두 분은 가정을 이끌어가는 방향이 비슷했다. 아빠는 엄마를 신뢰하며 많은 부분을 위임했고, 엄마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가정을 지켜나갔다. 아빠는 회식이나 다른 일이 없는 날이면 늘 칼퇴를 하셨는데, 아빠가 집에 도착할 무렵이 되면 엄마는 항상 따뜻한 저녁상을 차려두었다.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찌개 가장자리에는 나와 동생이 좋아하는 돈까스가 한가득 쌓여있고, 그 옆으로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계절 채소를 활용한 볶음과 무침 종류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떠들곤 했다. 주로 아빠의 직장 이야기가 식탁의 주제가 되었는데, 엄마는 아빠의 동료들에게 어울릴 법 한 별명을 붙이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가끔 아빠가 겪은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를 대신하여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뻐드렁니 삼촌’이 과장님께 혼난 상황을 상상했고, ‘헐랭이 큰아빠’가 숙취로 인해 지각했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웃음 짓곤 했다.
어떤 날은 화목했고, 어떤 날은 불안했다. 가끔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를 들으면 동생과 함께 작은 방 베란다에 들어가서 귀를 막으며 숨을 죽이곤 했다. 얼른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끝나길 바랐고, 나보다 겨우 두 살 어린 동생을 안심시킬 방법을 고민하곤 했다. 어린 나는 언제나 엄마 편이었기 때문에, 다툼이 있을 때면 괜히 아빠가 밉기도 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하는 두 분을 볼 때면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칼로 물 베기' 같은 그 다툼의 감정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눈이 조금 더 넓어졌다. 결혼 생활은 단지 낭만적인 사랑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우정과 가정을 더 잘 꾸려나가기 위해 때로는 충돌하는 갈등이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날은 평탄할 수도 있고, 또 어느 날은 불안정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결국 서로라는 점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는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부모님도 이제 와서 보면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두 분을 물과 기름처럼 생각했지만, 이러한 차이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한 의견 조율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며 살아온 부모님의 진심을 더 깊어진 그분들의 주름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나는 딱 부모님처럼만 내 가정을 지켜나가고 싶다. 서로의 곁에서, 가끔은 잔소리도 하지만 믿고 의지하는 관계를 영원이 이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