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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 Oct 09. 2024

번외. 시엄마도 놔뚜라족이었다.


목요일 이른 밤, 저녁을 간단히 챙겨 먹고 설거지를 마친 다음 소파에 뻗어 쉬고 있을 때쯤이었다. 남편 휴대폰이 웅웅대며 울렸다. 시어머니셨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실까? 원래 일찍 주무시는 분이셔서 걱정과 왠지 모를 불안함에 0.1초 정도 남편과 눈빛을 교환했다. 남편은 이내 전화를 받고는 평소 30초도 안되어 마무리하는 통화를 더욱 짧게 끊고는 말했다. 


"엄마가 토요일에 짜장면 해준다고 집에 오라시네. 갈까?"

"ㅎㅎ그래? 다녀와야지.  뭐"


결혼한 지 벌써 5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몇십 번은 뵈었을 시부모님 댁에 가는 것이 이제는 익숙하지만, 갑작스럽게 연락을 주시면 당황스러움이 여전히 앞선다. 그런 나의 마음을 남편은 이미 알고 있어서, 친정보다 100배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시댁에 자주 가지도 않았다. 시어머니께서 오랜만에 전화를 주셨음에도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토요일 오전이 되었고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시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집에는 시어머니 혼자 계셨다. 시아버지께서는 볼일이 있으셔서 일찍 집을 나가셨다고 말씀하시는 그녀 옆으로 큰 솥 한가득 짜장소스가 생성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아침 일찍 마트 가서 사 오셨다는 면발이 화르르 끓어오르고 있었고, 식탁에는 시어머니께서 새벽부터 총총히 움직이며 말아두셨을 참치김밥이 한 줄씩 포일에 감긴 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어머니. 이거 다 새벽부터 하신 거예요? 에이. 그냥 맛있는 거 사 먹으러 갈걸. 힘든데 뭐 이렇게 다 하셨어요."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또 안쓰럽기도 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OO이 너 참치김밥 좋아하잖아. 저번에 보니까 짜장면도 잘 먹는 거 같아서 엄마가 했어. 나가서 사 먹으면 몸에 안 좋잖아."


그렇게,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짜장면을 양 볼 가득 넣어가며 시어머니를 위한 먹방을 마쳤다. 더 주신다고 일어서시는 것을 애써 만류하며, 참기름 내음 솔솔 풍기는 참치김밥도 쉼 없이 먹었다. 그래, 내가 지금 있는 것은 시어머니의 정성을 가득 받아들이는 것. 아침부터 움직이시면서도 먹을 우리 모습에 힘듦도 잊으셨을 마음에 보답하는 것. 그뿐이었다. 






나는 시댁에서 한 번도 설거지를 해보지 않은 며느리이다. 명절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 이렇게 단출하게 식사를 마쳤을 때에도 싱크대에 그릇을 옮겨다 드리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이는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굳건하신 시어머니의 강압(?)적인 의지로 인한 결과라고 합리화하고 싶은데, 아무튼 나는 아직 단 한 차례도 시어머니 부엌에서 요리며, 설거지며, 하물며 그 쉬운 그릇 정리도 해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결혼 한 그 해부터 명절 차례상을 더 이상 준비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셨다. 30년 넘게 이어온 전통을 마침 내가 결혼한 해부터 깨뜨려주셨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 당신의 건강 악화로 인함이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의 노고를 며느리인 나에게 떠밀고 싶지 않으셨음을. 그리고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어머니의 의견이 수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 당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살아오셨음을. 


  




짜장면에 참치김밥까지 배 터지게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분명히 나를 만류하실 것이 분명하므로, 어머니께서 한 눈 팔고 계실 때 조용히, 하지만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걸 또 어떻게 아시고는 주방으로 달려오시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놔뚸 OO아. 놔둬놔둬. 엄마가 할게. 하지 마 놔둬."


순간 남편과 눈이 마주친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친정 엄마한테서만 듣던 '놔뚜라' 그 말투를 이곳에서도 듣는다니. 아니, 정말 엄마들은 놔뚜라족이 맞는 걸까? 시어머니의 단호하면서도 사랑과 배려가 묻어 있는 목소리에서 친정엄마를 느꼈다. 






그러니까 우리네 엄마는 분명 놔뚜라족이다. 친정엄마, 시엄마, 우리엄마, 친구엄마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놔뚜라족 여사님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여전히 철들지 않은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스스로보다 자식들을 항상 더 생각하는 엄마들. 그녀들께 진심의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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