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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 Aug 06. 2024

4.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

착한 딸 증후군

2024. 08



그들은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곤 내가 진짜 잘할 것이라고 확신해 줬다.  

그 강직한 목소리는 어떠한 수식어가 붙은 말보다 찬란했다.


 




나는 착한 딸이었다. 아니, 여전히 그럴 것이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기억나는 첫 번째 기억은 여섯 살 무렵인데, 그 시절부터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속을 썩인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부모님은 성실한 공무원이셨다. 일평생 지각이라고는 모른 채, 괜한 융통성 부리지 않고 작은 걸음이라도 뚜벅뚜벅 앞으로만 전진하는 분들이 신데, 그래서인지 나 또한 성실하고 착실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 반에 사십 명 남짓한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를 때까지 소위 '공부 잘하는 애'로 살아왔으며, 성적에 맞추어 나름 이름 있는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여 과수석으로 졸업장을 딴, 딸이었다.


(스무 살 이후로 유학(遊學) 생활 한 덕에 부모님은 잘 알지 못하는 암흑의) 취준생 시기를 잘 버텨내었고, 공공기관의 정규직으로 일하는 그런 딸. 때에 맞춰 결혼도 했고, 흑진주 같은 사위를 눈앞에 데려다준 꽤 믿음직한 딸이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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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엄마아빠에게 나의 퇴사를 (논의도 아니고) 통보한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엄빠와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는 행동이지 않을까. 부모님의 나를 향한 평판에 스크래치를 내는 행동은 아닐까. 마음이 졸여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그동안 구축해 둔 단단한 신뢰관계가 생애 첫 일탈이자 마지막 탈선을 믿음으로 승화시켜주지 않을까? 하며 내심 기대도 했다.  






고향으로 향했다. 평소에 비싸서 잘 가지도 않는 참치집에 갔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모두의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치집 정도는 되어야 혹여라도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마시는 한 잔의 소주가 달콤할 것 같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첫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중대한 발표를 할 것처럼 엄격한 분위기는 싫은데. 첫 시작이 힘겨웠다. 참치회 한 점을 집으며 옆에 있던 남편에게 몇 번이나 복화술로 말했다.  


    '나 이그믄 믁그 말흔드 (나 이거만 먹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복화술을 두세 번 반복하던 나를 대신해서 남편이 눈치껏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 이번에 G가 큰 결심한 것이 있어요. 회사를 그만 다니기로 결정했고, 저희 둘이 오랫동안 상의하고 고민하여 내린 결론이에요. 앞으로 G는 이러이러한 계획이 있고, 저는 G가 계획한 그 일들을 잘할 것이라고 믿고 지지하며, 제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편은 마치 외워둔 대본이라도 있는 듯, 한 번의 호흡으로 부모님의 추가적인 질문조차 필요 없을 만큼 기승전결이 완벽한 선언을 나 대신 끝냈다. 심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쿵쾅쿵쾅 울리고 있었고, 나는 부모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엄마가 먼저 넌지시 말씀하셨다.


  '겪어보지 않아서 엄마가 잘은 모르지만, 하고 싶은 거 잘해봐. 엄마는 하나도 걱정 안 해. 혹시 필요한 게 생기면 바로 말하고.'


 




빈 마음과 온전한 마음은 말의 온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진심과 응원이 가득 담긴 엄마의 단단한 한 마디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마음까지 얼어붙을 뻔하던 나의 심장을 녹였다.

가족이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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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착한 딸 증후군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들어 둔 나만의 새장 속에 갇혀서 새장 밖에서 나를 바라보고 지켜보던 그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긴 시간을 함께하며 오롯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드디어 새장을 열어 밖으로 나올 채비를 끝낸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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