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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Mar 19. 2023

그 아이



 나는 그 해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세기의 탈옥수로 불리던 범죄자의 현란한 티셔츠가 유행했고, 국가적 경제위기로 온 국민이 금붙이를 모으기도 했다. 밀레니엄이라는 새해에는 하늘이 천지개벽하고 신이 인류를 처단할 거라는 말이 난무했다. 지구가 무너져 내릴 거라는 두려움에 귀를 막고 제야의 종소리를 지켜봤다. 난세라는 말이 어울리는 해였지만, 그 해를 기억하는 건 다름 아닌 그 애 때문이었다.


 평생 엔지니어로 주어진 일만 할 줄 알던 아빠가 팔자에도 없던 사업을 시작한 건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함이었을까. IMF가 터지기 한 해 전 시작한 아빠의 사업은 체계도 두서도 없었다. 많은 기업들이 줄도산 하던 그 시기 아빠의 작은 사업도 무너졌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는 나와 언니의 손을 잡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엄마는 고모가 운영하는 해장국집에서 밤낮으로 일했고, 아빠는 서울에서 홀로 돈을 벌었다. 그 상황을 이해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이 약소해진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나는 싸가지가 없었다. 간절히 바라던 포켓몬 인형 대신 산타의 선물 포장지 속에는 공책과 연필 몇 자루가 들어있었다. 나는 이를 집어던지고 방문을 세게 닫고 들어갔다. 이미 어렴풋이 산타가 엄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평생 와본 적 없던 짭짤한 바닷가의 소금기가 절여져 끈적거리는 마룻바닥도 매 끼니 엄마의 반찬 대신 술 취한 아저씨들이 즐비한 해장국집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것도 열이 받았다. 산타의 선물은 좋은 명분이 되어줬다. 그럴 때면 엄마는 바닷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다리 보이지? 저게 이어지면 인형도 사주고 아빠랑도 서울에서 같이 살 수 있어."


 나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옆 건물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입학식 첫날 교실에서 널 봤다. 너는 노란색 얇은 면티를 입고 있었다. 이른 봄의 개학으로 아직 날이 풀리지 않아 외투를 입고 있는 두툼한 아이들 사이로 네가 티 한 장을 입고 있어서였는지 루비 반지를 끼고 금목걸이를 한 고모가 입학선물이라고 사준 두터운 무스탕 자켓을 입은 내가 볼성 사나와 노려보는 네 눈빛 때문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까치집 머리를 하고 핏자국이 눌러 붙은 노란티를 입고 있어도 나를 노려보는 네 눈빛만큼은 반짝였고 그래서 네 옆자리에 앉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네 옆에 나를 앉혀줬다. 너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려는 나에게 너는.


“너 광안리 해수욕장 가운데 해장국집 애지?”


산타의 선물도 집어 던지는 싸가지도 네 말투 속 적개심 앞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너는 검정펜을 꺼내 책상의 한 가운데 선을 그었다.


“이 선 넘어오지 마.”


그 선에 위축된 내가 한 말은 겨우 “네 쪽이 더 넓잖아.” 따위였다. 그 말이 어이가 없었는지 너는 피식 웃더니 그 선을 조금 더 자기 쪽에 가깝게 다시 그었다. 마치 조금 더 자신에게 다가와도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수업이 끝나고 그 날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렸다. 엄마가 아빠가 혹은 같은 학교 언니오빠들이 가져온 우산 속에 삼삼오오 모여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중앙계단 문 앞에 서있었다. 너는 나를 지나쳐 하늘을 한번 힐끗 보더니 비를 맞으며 운동장 쪽으로 나섰다. 나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태어나서 처음 ‘우산 없이 비를 맞아도 되는구나’를 깨달았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무스탕 자켓을 벗어 머리에 뒤집어쓰고 네 뒤를 졸졸 따라갔다.


 너는 키가 컸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너를 잰걸음으로 쫓아가며 나는 뱁새가 된 기분이었다. 한번 씩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을 마주치는 너는 ‘왜 자꾸 따라 오냐며’ 쏘아붙일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뒤를 돌아 나를 확인했다. 집이 아니라 해장국집으로 가 밥을 먹어야했지만 나는 길을 몰랐다. 너를 따라가다 아는 큰 길이 나오면 어른들에게 물어봐야지. 하지만 이내 고모네 해장국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너는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홱 돌아 다시 왔던 길로 향했다. 나는 금붕어마냥 뻐끔거렸다.


 가게 안에서 뛰쳐나온 엄마는 홀딱 젖은 나를 수건으로 닦아주며 나무랐다. 추운데 왜 혼자 비를 맞고 왔느냐고. 찻길이 위험한데 길도 모르면서 왜 여기까지 혼자 왔냐고. 무스탕 코트에 묻은 비를 털고 단추를 채워주었다. 우리 엄마에게 너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새로 사귄 친구라고. 여기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같이 따뜻한 해장국을 먹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우산을 나눠 쓴 채 너희 집에 놀러가자고. 하지만 너는 뒤도 보지 않고 가버렸다. 엄마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혼자 오지 않았다고. 그리고 위험하지도 않았다고.


 봄이 지나고 날이 더워져도 너는 혼자였다. 어떤 애는 네 손톱이 마귀할멈처럼 길다고 너를 피했고. 어떤 애는 네 근처에서 쉰내가 난다며 피했다. 또 어떤 애는 엄마가 쟤랑 놀지 말랬다며 떠들어댔다. 반 친구들은 모두 너를 피해 다녀도 너는 단 한번도 아이들의 눈을 피한 적이 없었다.


 하루는 4학년의 덩치 큰 오빠가 교실 뒷문에서 너를 불러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몰려든 복도에서 너의 어깨를 툭툭 밀쳤다. 너는 입술을 씰룩거렸지만 선배의 위악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널 버리고 도망갔다'라는 말에 눈이 돌아 4학년 선배에게 덤벼들었다. 처음에는 널 말리던 아이들도 눈이 돌아버린 너를 말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모셔왔고 너는 2명의 선생님이 강제로 너를 떼어낼 때까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한 남자 선생은 너를 똑바로 세운 다음 손바닥에 온 힘을 실어 너의 뺨을 날렸다. 너는 어른의 손바닥이 익숙하다는 듯 금세 균형을 잡고 선생을 노려봤다. 선생이 다시 손을 하늘 위로 올리자 나는 너와 선생 사이를 막아섰다. 저 오빠가 먼저 너를 때렸다고 너는 가만히 맞기만 했다고. 그 말을 하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맞은 것처럼 볼이 뜨거웠다. 또 너는 가버리겠지. 비 오는 날 그랬던 것처럼. 펑펑 울던 내 뒤에 선 너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날 후로도 학교에서 너는 절대 책상의 선을 넘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내가 도서관을 들리고, 주번을 맡아 청소가 늦게 끝나도, 중앙계단 문 앞에는 어김없이 네가 서 있었다. 네가 가버릴까 뜀박질로 상기된 내 볼을 너는 힐끗 한번 쳐다보고 앞장 서 걸었고 나는 늘 잰걸음으로 뒤 따랐다. 가끔은 네가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너를 앞서가면 더 이상 네 뒷모습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너와 나 사이 그 거리를 지켰다. 네가 멈추면 나도 멈췄고, 네가 걸으면 나도 걸었다. 네가 조금 더 넓게 그어준 그 선만큼의 거리, 네가 좀 더 너에게 가깝게, 더 가깝게. 그러다 언젠가 우리 사이 선이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날이 추워졌다가 따뜻해졌다가 산타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엄마 앞에서 던지지 않고 내 방 서랍장에 집어던지는 해가 거듭됐다. 초등학생이던 우리는 그 옆 건물의 중학생이 되었고, 곧이어 맞은편 건물의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다리의 양끝이 가까워졌다. 중앙계단 문 앞에 네가 서있는 날들은 줄어갔고, 너는 낮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밤에는 본드를 분다는 형들과 어울린다고 들었다. 가끔 학교 앞 골목길에서 여름에도 하얀 연기를 내뱉는 너와 눈이 마주치곤 했다. 네 친구들은 뭘 쳐다보냐며 나를 불렀고, 너는 그 친구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 돌아섰다. 엄마는 나의 전학준비를 시작했다. 서울 8학군에 위치한 고등학교라고 했다. 바다 위의 다리는 양 끝의 서로를 이어주는 가교가 아닌 서로를 가르는 책상 위의 직선이었을까. 다리가 완성되던 해 네가 먼저 학교를 떠났다. 이번에는 엄마 없는 자식이라 욕을 하던 선생을 패버렸다고 들었다.


 전학을 가던 마지막 날 엄마는 이삿짐 준비로 바쁘고 담임과의 면담이 길어졌다. 교무실에서 보이는 창가에는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점점 더 굵은 빗줄기로. 교무실 문을 열고 중앙계단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점점 더 빨리, 빠르게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 설마. 하지만, 너는 없었다. 그 대신 긴 장우산이 놓여있었다. 포스트잇 쪽지와 함께.


‘이젠 우산을 가지고 다녀’


  간혹 길에서 키 큰 남자의 뒤를 잰걸음으로 쫓아 걷는다. 목적지가 아니어도 다리가 보이면 건너곤 한다. 여름에도 하얀 입김을 내뱉는 교복 입은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피하지 못한다. 항상 우산을 챙기지만 가끔 비를 맞는다. 혼자지만 위험하지도 춥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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