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는 무수한 표현만이 부유합니다
전철의 장님이 무릎 위로 올린 수지침을 사지 않아
갓길에 마주친 노파의 껌 바구니를 외면한 까닭에
어젯밤은 쉽사리 달콤한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부산스럽던 그 새벽
노인의 리어카에 놓인 간이 라디오는
들어본 적 없는 뽕짝을 뱉어냈습니다
맞은편 가로등 벤치엔 경비들의 담소가 놓였고
거기서도 안녕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단함에 비례해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물가지수와 경제지표, 어려운 학문 용어처럼
고통이란 단어도 배우기 전까지는
그 뜻을 알 수 없다면
사는 것은 공평해질까요
한 개비의 담배, 한 병의 소주
그 어떤 것도 위로할 수 없는 밤 때문에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만년필로 종이를 긁어내 잉크를 묻히고
플라스틱 수지침, 고물 라디오와 리어카
그리고 텅 빈 구걸 바구니
오늘 밤은 편히 잠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