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들의 반란
저희 가족은 30대로 1년 반을 살다 다시 20대가 된 큰아들을 포함해 20대 자녀가 세 명 있는 평범한 가정이에요. 하지만, 각자의 삶터가 모두 달라 5명의 가족이 4곳의 도시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요. 아마도 초초초핵가족이 있다면 바로 저희 집이 아닐까 해요.
10년 가까이 주말부부인 남편과 저는 몇 년 동안은 더 주말부부일 것 같고요. 품을 떠난 아이들도 각자의 삶이 있어 잘 만나지 못해요. 그래서 온 가족이 다 볼 수 있는 날은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일 년에 겨우 3~4번 밖에 되지 않아요. 모두가 일정을 맞춰도 갑자기 발생하는 돌발 변수에 이 빠진 옥수수가 돼버리는 날이 많거든요. 그때마다 얼마나 속상하고 서운한지요.
좋은 곳을 여행하며 맛있는 걸 먹고 즐길 때마다 오지 못한 가족을 생각하고 서운해하는 걸 보면 저희 가족의 자랑 중 제일은 ‘여행 코드’가 잘 맞는 게 아닐까 해요. 30년 넘게 여행지에서 싸운 기억은 별로 없고 아쉽고 행복한 추억만 가득한 걸 보면 정말 환상의 콤비 아닌가요? 가족이 다섯이나 되는데 어떻게 취향과 성격이 똑같겠어요. 하지만, 나보다는 가족의 즐거움과 추억을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요? 여행을 리드하는 가족에게 100% 협조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걸 보면, 서로를 향한 탁월한 공감 능력을 갖고 있나 봐요.
내가 아닌 모두가 좋아할 곳을 검색하고 공유하는 저희 가족은요. 어린이 박물관에서도 2시간을 다 함께 즐길 수 있고요. 동물원에서는 먹이 주기도 꼭 해야 된답니다. 또, 모일 수 있을 때 모이고 먹을 수 있을 때 먹자는 게 보이지 않는 신념 같은 거라 엥겔지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높아요. 지역 맛집은 무조건 가봐야 하고 새로운 건 먹어보고, 체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대마왕들이거든요. 문제는 방안퉁수 들이라 가족들끼리 있을 때만 이렇게 즐겁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 틈에 섞이거나 함께 하게 되면 모두의 몸이 굳어버리는 극 I( Introvert, 내향적) 들이라 그게 좀 서운해요.
지난 4월에도 남편과 제주도에서 고등회를 먹다가 급가족여행을 계획했어요. 이유는 딱하나, 고등회를 좋아하는 딸에게 먹여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밥 먹다 날아간 단체 톡에 의해 5월 초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저희 가족여행은 이렇게 누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숙소도 안 정하고, 때로는 1박이 2박이 되기도 하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즐기는 거지요. 아이들이 성인이 된 요즘은 모이고 흩어지는 날짜가 서로 달라지기도 하지만 마음 편한 추억이 가득 쌓이는 해피엔딩인 것만은 확실해요.
폭우가 쏟아지던 이번 제주도 여행도 갑자기 보직이 변경된 딸은 하루 늦게 합류하고 데이트가 있었던 큰아들은 하루 먼저 떠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어요. 그래도. 각자의 상황에 맞춰 새로운 것들을 체험하고 즐기고 맛보는 여행을 했답니다. 가족만의 특별한 추억을 위해 서로의 캐릭터를 직접 그려준 옷을 입고 가족사진도 원 없이 찍었고요.
이렇게, 가족들과 즐거운 여행도 하고,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아주 행복하지만요. 최고의 파트너는 누가 뭐래도 남편이에요. 웃으며 떠났다 싸우고 돌아온다며 남편과는 여행하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데요. 전 남편과 함께 여행할 때가 가장 편하고 좋은 거 같아요. 저녁 식사를 하며 소주 1병만 사주면 하루 종일 손과 발이 돼주는 건 물론이고 안전까지 책임져주거든요.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모두 맡겨 놓고, 갑자기 유턴을 하고 목적지가 바뀌어도 화 한 번 안내는 파트너를 만나기 어렵잖아요. 이렇게 맘 맞는, 아니 맞춰주는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으니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차곡차곡 챙겨야겠어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아요. 그 행운을 장롱 속에 고이 모셔놓고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함께 키우며 희로애락의 산을 넘는 순례자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금상첨화가 아닐까요? "여행은 단지 도착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동안의 경험과 모험이다."라고 말한 리브 알트만의 말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