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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Aug 31. 2024

인천 41번 버스 (1)

지희, 은행이 되다


언제까지도 어머니가 아이를 감싸고 보호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 아이도 사람이고 자기 몫의 조그만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

(펄 벅,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41번 버스를 타고 지희는 심부름을 간다.


엄마가 급하게 돈이 필요한 날, 이모가 급하게 돈이 필요한 날 지희는 은행이 된다. 엄마에게 10만원 수표를 받아서 자기 양말 밑에 꾸깃꾸깃 넣는다. 지희 자신의 양말에 돈이 있었는지는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르고 지희와 엄마와 이모만 알고 있다.


41번 버스를 타고 이모네 집으로 가는 길.


동서우유를 지나 인하대 후문을 지나간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번화가로 나가기 위해 버스를 우르르 타는 모습이 신기하다. 손에는 책을 들고 옆 가방을 메는 언니들을 보면서 대학생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지희가 더 어릴 적 어느 날 인하대 후문 앞에 최루탄 냄새로 가득한 날을 기억한다. 어느 날은 길에 사람이 정말 많았었고, 나중에 그것이 ‘시위’ ‘데모‘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하대 담장 옆에는 큰 종이에 여러 글씨들이 써있고 대자보 앞으로 사람들이 여럿 삼삼 오오 모여 이야기하는 중이다.


41번 버스가 인하대 후문을 지나 굴다리를 돌면 용현동이 나온다. 용현동 첫 정거장이 이모네.


이모네에 들어서면 이모가 반기고 용돈을 주신다. 수고했다는 심부름 용돈. 엄마가 드리라는 돈을 꺼내서 이모에게 드리고 지희는 다시 집으로 간다.

이모네 집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 물텀벙이 골목이 있다.


물텀벙이는 아구를 부르는 이름이다. 지희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물텀벙이 골목은 용현시장 주변으로 여럿 있다.물텀벙이를 다같이 외식하는 날 먹었는데 미더덕을 잘못 씹어서 입이 데인 적이 있다.


 물텀벙이 골목 앞은 용현시장이 있다. 용현 시장은 신기촌시장과 비슷하기도 하고 지희에게는 다른 곳이기도 하다. 살던 곳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용현 시장에는 도너츠 가게가 있다. 엄마는 여기 이모네 집에 놀러왔다가 용현시장에서 찹쌀 도너츠와 꽈배기 도너츠를 산다. 찹쌀도너츠는 팥이 들어가고 쫄깃하다 못해 찰지지만 엄마와 아빠가 좋아한다.


 여러 모양으로 꼬아진 도너츠를 튀겨서 설탕에 뿌려진 도너츠를 ’앙‘하고 물면 설탕이 온 입에 묻어서서로 털어주느라 아우성이지만 도너츠를 먹는 일은 좋다.


용현 시장은 마늘을 싸게 파는데 엄마는 해마다 마늘철이 되면 마늘 한무더기를 산다. 우리동네 시장도 마늘이 많은데 왜 남의 동네까지 가서 무겁게 들고와야 되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무거운 마늘을 지고 버스를 타곤 한다. 마늘대를 자르고 마늘 껍질을 벗기고 모아놓는다.


 어릴 때는 엄마가 시키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지희도 엄마가 마늘을 사오는 날이면 엄마랑 동생들이랑 진 마늘을 깐다. 칼로 마늘 뿌리를 자르고 서로 떼어내고 하나씩 하나씩 머리 꼭지를 떼어내면 통마늘이 된다. 엄마는 통마늘을 여며서 삼겹살을 구울 때 넣기도 하고 여기저기 반찬에 저민 마늘을 넣는다. 또 마늘을 잘게 다져 네모지게 얆게 펴놓는데 냉동실에 넣어두면 요긴하게 쓴다.


 41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41번 버스는 독쟁이 고개를 지나 용일 초등학교를 지난다.  독쟁이 고개는 꽤 경사가 높아서 버스가 고개를 오를 때 신기하다. 독쟁이 고개 위쪽으로는 수봉산이 있는데 이 산에는 수봉공원이 있다. 수봉공원에는 다람쥐집이라는 놀이기구가 있는데 지희는 어려서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지만 사촌언니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늘 타는 것을 보면 언니들이 신기했다. 다람쥐통을 타면 동전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동전을 주우러 가득 다람쥐통 놀이기구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독쟁이 고개를 지나 다시 동서 우유를 지나면 신기촌 시장 골목으로 가까이 오고 지희는 버스에서 내려 문구사를 지나 과일 골목에서 밑으로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지희는 집으로 가면서 주머니의 5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 만지작 거린다. 용돈으로 받은 동전으로 무엇을 사먹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어둑어둑해지려는 저녁이 되는 풍경이 예뻐서인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엄마에게 이모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있어서 좋지만 그 무엇보다도 작은 일을 내 힘을 스스로 해내었다는 자신감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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