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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Sep 03. 2024

신기촌 시장 속 음식들

순대국밥과 시장의 음식들

“<탐정 해리엇>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내 또래 여자아이가 사는 장소, 꼭 나처럼 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끼적거리기 좋아하고 특이한 음식 먹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사는 어떤 새로운 곳에 도달했다. ”

(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




지희 엄마가 손님이 많아서 바쁜 날은

시장 속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날이다.


순대골목 집사님네는 순대국밥이 일품이다.

“집사님, 국밥 2개 주세요.”하고 지희는 집사님네로 뛰어간다. 집사님은 “지희 왔냐 ” 하시면서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뜨거운 들통에서 순대를 척 꺼낸다. 지희는 집사님이 순대를 써는 모습을 구경한다.


집사님이 능숙한 솜씨로 장갑을 끼고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하얀 헝겊에 둘러싸인 순대와 간을 꺼낸다. 도마에 하나씩 순대를 올리고, 하나씩 하나씩 순대를 썬다.  칼이 순대 위에 올라가고 리듬감 있게 순대들이 잘려나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집사님은 옆에 있는 큰 들통에서 긴 국자로 국물을 뚝배기에 올리고 한 손 가득 순대가 가득 집어 그릇에 담는다. 혹여 꼬마손님이 배고플까봐 한손 가득 더 순대를 담아 집어넣는다.


다대기를 풀어서 빨갛고 대파를 넣은 국밥을 지희가기억하기도 전 아주 어려서부터 자주 먹었다. 지희는 집사님이 친절해서인지 그냥 단골이어서인지 이 국밥이 제일 맛있게 느껴진다.


순대골목 저 끝에 우체국을 못 가서는 파마머리를 하고 엄청 눈썹이 진한 아줌마가 하는 육개장집이 있다. 육개장국물이 엄청 빨개서 그냥 빨강이 아니라  ’아주 빨강‘ 이라고 할 만큼 빨갛다.  주인아줌마는 네모난 은색철판에 육개장과 반찬, 공기밥을 담아 직접 가게로 배달을 온다. 아줌마가 머리에 그 무겁고 뜨거운 육개장 국물을 하나도 안 흘리고 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다.


 지희네 삼 남매는 이 육개장을 아주 어릴적부터 먹어서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 잘게 찢어서 넣은 부드러운 소고기, 숙주나물, 듬뿍 든 고사리, 빨간색 국물색과 대비되는 노란 계란까지. 매운 국물에 호호 국물을 불어가며 밥을 말아 먹으면 아주 맛있어서 지희는 엄마 가게에 오늘이 손님이 많기를 기다린다..


어떤 날은 짜장면을 먹는다. 시장안에는 화향원이라는 짜장면집이 있다. 여기서 짜장면을 시키면 짜장면 위에 달걀부침과 완두콩을 예쁘게 올려준다. 달걀부침은 먹으면 사각사각할 정도로 바삭바삭하게 익혀서 자장면 위에 올려져서 온다. 배달하는 아저씨는 구성진 목소리로 “자장면이요”하면서 지희네 가게에 그릇을 놓고 간다.


또 시장 순대골목 지나 육개장 집을 지나면 우체국 근처 국수집이 나온다. 국수집에 가서 사 먹을 때도 있고 역시나 엄마네 가게에 손님이 많을 때 배달을 시켜 먹는다. 지희와 동생들은 이 국수집에서 잔치국수를 시켜먹는다. 멸치국물을 들이키고 국수의 새하얀 가락을 후룩후룩 잘도 먹는다. 지희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어렸을 때 미용실 손님이 아주 많은 날, 엄마는 국수집에서 국수를 시켜놓고 아이들을 먹이기 시작하다가 손님들 머리를 했다. 유난히 손님이 많았던 날 손님 머리를 모두 마치고 방에 들어가니 아이들은 방바닥에 국수를 다 흘려놓고 먹다 잠이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뭔가 슬픈듯 이야기했지만 지희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엄마가 기억하고 있다는 게 좋기도 하고 신기했다.


 시장 음식 중에서도 지희는 호떡을 좋아한다. 호떡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호떡아줌마가 호떡을 만드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줌마는 큰 소쿠리에 담긴 찰진 호떡 반죽에서 한 수저 떠내어 아줌마에 손에 얹는다. 손에 얹은 동그란 반죽을 수저로 누르고 수저로 눌러진 동그란 공간에 땅콩이랑 섞인 흑설탕을 넣고 다시 동그란 공모양을 만든다. 기름이 철철 흐르는 철판 위에 공모양의 반죽을 얹으면 ‘착’ 소리를 내며 호떡 반죽의 아랫부분이 지글지글 익어가기 시작하고 아줌마는 공모양의 반죽을 호떡 모양으로 납작하게 누른다.

동그란 달 모양의 호떡에 설탕이 녹은 무늬가 아른거리면 아줌마는 미리 잘라둔 투박한 종이에 호떡을 얹어준다.


뜨거운 호떡을 먹으면서 다시 아줌마가 호떡을 만드는 장면을 보는 게 지희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먹는 일하는 사람들의 음식,

그것이 시장의 음식이다.

지희가 사는 곳 , 이 곳 사람들의 음식에는

 서로의 땀이, 서로의 손길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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