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 소설가)
순대골목은 그야 말로 순대를 파는 골목이다. 하지만 순대만 파는 것이 아니라 간과 허파를 큰 찜통에 넣어서 삶아파는 곳이다. 사람들은 머릿고기라고 부르는 돼지 머리를 가게 앞에 놓고, 족발과 순대를 같이 쌓아놓고 판다. 지희는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돼지 머리를 어디에다 쓰는 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드라마를 보다가 동네에서 보던 돼지 머리에 고사를 지낸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지희는 학교를 갈 때 생선골목과 순대골목을 지나서 학교에 간다. 친구들이 지희네 집에 오고 싶어했지만 지희는 아직 시장에서 사는 친구들말고는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다.
지희에게 이 골목을 지나오는 것은 마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학교의 세상, 교과서와 공부의 세상에서 지희의 일상의 세상으로 오는 문.학교에서는 다루지 않는 삶의 냄새와 땀, 여러가지 소리들, 얼룩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 깨끗하고 단순한 학교라는 세상에서 지희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문.
정제된 언어와 간결한 말들, 가지런히 꽂혀진 책들에 갇힌 이 말들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오가는 말들 속에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곳으로 도착한다.
지희에게는 늘 일상적으로 들어갔다가 오는 골목이지만 이 골목의 이 날 것의 모습을 보여줄 만한 용기가 아직 어린 지희에게는 없어서 학교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는 못했다.
이 골목은 지희에게 지희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문만은 아니었다. 순대골목 집사님은 지희가 가장 좋아하던 어른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았던 점은 그녀는 그 어떤 아이라도 선입견 없이 바라봐주었다는 것이다. 그가 암에 걸려서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교회와 시장 골목 사람들은( 지희를 포함해서)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했다.
지희는 더 이상 신집사님이 그 가게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만 그녀가 이야기를 건넸던 따뜻한 말들은 지희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분이 일했던 그 집을 바라보며 지희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그녀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가 따뜻하게 건넨 눈빛과 말은 지희와 이름 모를 아이들의 작은 가슴에 남아 여전히 여전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