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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Sep 07. 2024

시장 속 예쁜 소리 피아노

지희, 피아노 학원에 가다

책이 내 인생에 해준 일과 내 제자들의 인생에 해줄 일들에 감사한다. 나는 아이들이 나의 충실한 견습생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

(낸시 앳웰,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시장이란 살아남기 위한 곳이기에

신기촌 시장도 생존의 소리들이

이 곳을 뒤덮고 있다.


어떻게든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외치는 소리들.

“골라골라"에 맞춘 박수소리들.

노래인지 흥얼거림인지 모를 소리들.


이웃 가게 주인들끼리 소리 웃고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리들.


손님들의 흥정하는 소리들.

“천원만 깎아줘“

“오백원만.”

"아니 그러지 말고 깎아줘."


때로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소리들.

간간히 들려오는 가게들의 라디오 소리와

텔레비전 소리들.

가게들 사이로 배달하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소리들.

그야말로 여러 소리들의 향연.


이러저러한 소리들로 가득찬 시장,

그곳의 소리에 균열이 생겼다.


시장 한 가운데의 소리들 가운데

음악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장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장 한 가운데 골목 큰 슈퍼마켓 옆에 피아노학원이 생겼다. 지희는 이 곳에서 나고 자라고 했지만 여기서 피아노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교회를 제외하고 피아노가 있는 곳은 고모네 정도.


지희는 모르고 있던 피아노 학원의 소식을 동생 윤희는 친구를 통해 알고 있었고 엄마에게 피아노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어쩐 일인지 엄마는 지희와 윤희를 같이 피아노에 보낼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채로 처음 가게 된 피아노 학원.

학원의 이름은 '예쁜 소리 피아노'

피아노학원은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방마다 검은색 피아노가 하나씩 놓여있다. 방 옆으로는 아이들이 책을 풀고 어린이 잡지를 볼 수 있게 해놓았다.


키가 큰 여자선생님.

얼굴이 하얗고 짧은 머리에 서글서글한 얼굴.

누가봐도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얼굴과 분위기.

지희는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편인데

 여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낯선 데 편안했다.

아니 낯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었다.


1층만 학원이었고 2층은 선생님댁. 지희는 금새 피아노학원을 좋아하게 되었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좋았고 선생님도 무섭지 않아서 좋았다. 더구나 어린이잡지 ‘새벗’과 만화잡지들이 있어서 좋았다.


 선생님이 내 둔 음악이론 숙제들을 하고 선생님의 레슨을 받고 나면 새벗을 읽을 수 있었다. 새벗은 만화도 많았지만 읽을 거리가 꽤 좋았다. 다양한 아이들이 실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어느 겨울호에는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남자아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설피’를 신고 다녀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지희가 사는 인천은 눈이 와봐야 흩뿌리는 정도이고 그 나마도 눈사람도 못 만드는 정도인데, 사람 허리까지 눈이 오다니 너무 대단했다.


지희가 초등 4학년에 시작한 것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진도도 빠르고 습득력이 좋았다. 선생님은 지희가 빨리 배우는 게 기특했는지 지희의 속도에 맞춰서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집에 가는 길에 손가락을 연습하는 게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악보를 읽을 수 있는게 좋았다. 3학년 때부터 배우는 음악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이미 악보를 아는데 지희만 몰라서 옆의 아이 눈치를 보며 아는 체 하느라고 힘들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나니 학교에서 배우는 리코더는 껌이었다.


피아노를 배우니 신나고 세상이 달리보였다. 특히 체르니로 넘어가서 하농을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하농을 치면서 손가락의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같은 곡을 치면서도 한 번 연습을 네 번의 세트로 시켰다. 첫번째는 일반 연습, 두 번째는 스타카토로, 세 번째는 붙점, 네 번째는 반대로 강세를 준 붙접.


 이 여러 번의 손가락연습은 지희의 손가락에 힘을 길렀고 손가락에 힘이 길러질수록 지희의 마음에도 무엇인가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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