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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국어 수업(2)

심훈의 상록수

by 가온슬기

"나에게 좋은 책이란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와도 같다. 나는 지칠 때까지 책을 읽은 후에야 배가 불러 잠자리에 든다..책을 가슴에 품고 거기에 거꾸로 매달려 꿈을 꾼다. 나는 느릿하지만 꾸준히 읽는다. 그렇지 않으면 굶주려 죽을 것이다. "

(얀 마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中)





방학동안 선생님은 심훈의 상록수를 읽어오는 것을 숙제로 내주었다. 지희는 방학이 시작되기 전 자기 용돈을 가지고 동네 서점에 갔다. 엄마 미용실의 잡지를 사거나 어린 시절 '완전학습'이라는 문제집을 사올 때 가던 작은 서점에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

서점은 신기촌 시장 안에 있지 않고 시장 건너편 아파트 단지 앞 큰 상가에 있었다. 서점의 창문은 각종 청소년 잡지와 패션 잡지 등을 홍보하는 광고물이 붙어있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서 중앙 진열대에는 각종 잡지와 문제집들이 잘 보이게 되어 있었다. 지희는 벽 중앙에 <소설>이라고 써 있는 책장 앞에 섰다. 소설 책장에서 소설 책들을 손가락들로 만져가며 책을 찾고 상록수를 꺼내들었다.


서점에서 문제집이 아닌 자기 손으로 사온 첫 소설책 ‘ 상록수’ . 서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중학생이 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미용실 소파에 앉아 무릎에 심훈의 '상록수'를 펼쳤다. 조용히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지희. 처음에는 제목도 표지도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다 금새 책 속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자신의 뜨거운 청춘을 글 모르는 농촌 아이들과 지역 사람들을 위해 바친 채영신의 삶을 읽으며 지희는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던 남자 동혁과의 서사 그리고 일제 시대라는 시대의 비극이 지희에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몰라서 땅을 뺏기기만 하던 사람들

뙤약볕에 일하가 이름 모르게 스러져가는 사람들


일제 시대의 절절한 아픔과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팔을 입고 있는 지희의 팔에서 느껴질 정도의 서늘함으로 밀려들어왔다.


미용실 밖을 비추는 뜨거운 햇빛 .

시장의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

동네 아이들이 시장 골목에서 노는 소리들.

미용실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

지루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간간히 돌아가며 지희의 얼굴과 팔을 시원하게 해주는 선풍기 바람.

유리잔에 송글송글 이슬이 맺혀 지희 앞에 놓여진 시원한 보리차.


그 어느 것 하나 화려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지희의 공간과 물건들이

일제 시대의 비극을 살아냈던 이름 모를 사람들과 그들을 사랑했던 채영신의 이야기와 대비되니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앎이라는 것.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채영신이 스러져가는 농민들에게,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글을 통해 답답한 현실을 밝은 눈으로 보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국어 선생님이 지희와 친구들에게 여름 방학 숙제로 상록수를 내 준 그 마음은

채영신이 건냈던 그 마음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너희 만의 길을 가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답답한 세상이고

여전히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야.

하지만 ‘앎’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너희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단다.

책을 통해 날아가보렴. 그렇게 그렇게.


지희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지희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앎은 상록수의 채영신이 보여준

‘열정’과 ‘헌신’의 삶, 그런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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