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국어수업(1)

황순원의 '소나기'

by 가온슬기

설레임으로 기다린 국어수업.


국어선생님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짧은 단발의 파마와 갈색 염색 머리스타일은 발랄하고 소탈한 성격을 보여주는 듯 찰랑거렸다. 하늘빛이 도는 청바지를 입고 낭낭한 사투리가 들어간 소리로 수업을 했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는 황순원이다. 국어책을 집에서 미리 읽을 때 지희에게는 황순원의 소나기는 크게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나서는 사뭇 달랐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설명할 때의 선생님의 열정은 빛났다. 특히 '쪽빛'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선생님은 신나게 보였다.

"얘들아. 여기 쪽빛이라는 단어 보이지? 쪽빛이 무슨 뜻인지아니? '쪽'이라는 풀로 염색을 한 빛이라는 뜻이야. 파란 하늘이라고 쓰기보다 황순원은 그 하늘빛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던 걸거야. 멋있지 않니?"


'쪽빛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다니'

지희로서도 '쪽빛'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단어였다.

지희로서도 이 단어를 중학생이 되어 접한 것이 새로웠다.

선생님은 우리말에 파란색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을 나열했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파랗다. 퍼렇다. 새파랗다. 푸르둥둥하다.'

'파랗다' 는 것을 표현하는 여러 표현들도 되돌아보니 쪽빛’이라는 단어가 더 새롭게 느껴졌다.


'소나기'를 다시 읽으니 소년과 소녀의 사랑, 소년의 순수한 마음이 글 속에서 느껴졌다. 더 '소나기'가 아름답게 느껴진 건 이 작품을 자랑스러워하는 선생님의 마음이었다. 삽십 대 젊은 국어교사로서 중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건네는 마음. 그 마음이 이 작품을 빛나게 만드는 바탕같았다. 선생님이 위그든씨의 사탕가게를 읽을 때도 나다니엘 호손이라는 작가의 '큰 바위 얼굴'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 아이들에게 문학 작품으로 감동을 주려는 한 교사의 치열한 몸짓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래서 지희는 국어시간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학이 될 무렵,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방학 계획을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고향으로 내려가 책을 실컷 읽겠다고 이야기했다.


"샘네는 시골이야. 우리 집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비닐하우스 옆에 창고방 같은 게 있어. 그 창고 방에서 읽고 싶은 책을 가득 갖다 놓고 전기장판에서 몸 지지다가 심심하면 동네 산책하고 그러다가 사과 박스에서 사과 꺼내서 먹다가 그럴거야."


단발머리의 여자 아이들은 모두 '와아!'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선생님 덕분에 문학 소녀가 된 아이들은 읽고 싶은 책을 한가득 쌓아놓고 읽는다는 말에 부러워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과수원, 바람, 햇빛, 별이 쏟아지는 밤을 이야기하면서 그 곁에 책이 있다고 말하는 젊은 국어선생님. 그녀는 '낭만'이라는 말이 그저 책 속에, 노래 속에 숨어있는 말이 아니라 삶 속에 실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녀는 문학과 삶의 아름다움, 낭만적인 삶 같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어했다.


https://5easy.ebs.co.kr/aujisik/detail/101447




keyword
화, 토 연재
이전 02화국어책 그리고 비틀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