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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책 그리고 비틀즈

세상을 읽어내려 갈 준비

by 가온슬기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에 담긴 어린 지희는 자기 몸집보다 더 큰 점퍼에 가슴에는 손수건을 달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얼굴이 발그레하고 사진 속에서도 긴장되어 보이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과 당시 잔뜩 긴장했던 기억을 덧붙여보면 학교 입학은 8살 아이에게 어려운 일.


그에 비해 중학교 입학은 설레이는 마음이 조금은 더 컸다.


입학식 날 담임선생님은 성적표를 나누어주었는데 숫자가 두 자리가 보였다. 알고보니 반 배치고사 등수였다. ‘잘 본 건가..’하고 옆에 있는 아이 것을 보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등수는 세 자리.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희의 한 학년 숫자는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러고 보니 반 배치고사를 보러 간 날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천 명에 가까운 여자중학생들이 한 꺼번에 시험을 보러 간 날. 반이 15반까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희 자신은 반배치고사를 준비한 적이 없고 학교에서 수업 정도를 받았는데 배치고사를 잘 본 건 책 덕분이구나했다.


미용실 가게방 작은 지희의 책장에 꽂힌

먼나라 이웃나라와 한자숙어 책 그리고 집에 있는 위인전들. 아빠의 신문, 엄마 미용실의 잡지


시장 속 작은 허름한 집에서 혼자 책을 읽어내려간 그 시간들. 책은 지희의 마음 저 뒤편에서 힘을 길러주었다. 신기촌 시장에서 지희는 세상을 읽어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희는 반 배치고사 날 받아온 교과서를 집에 쌓아두고 읽기 시작했다. 어린시절에도 교과서를 받아오면 국어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중학교 국어책은 더 재미있었다. 국어책에서 지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사탕가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해의 선물이라는 제목이었다. 작은 아이가 동전 대신 버찌를 내밀었는데 그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았던 위그든씨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위그든씨의 선한 마음도 아름다웠지만 아저씨의 사탕 가게를 묘사한 여러가지 말들, 젤리와 사탕의 맛을 그린 말들이 마음 속에 들어와 상상력을 자극했다.



TV로 KBS3 채널을 틀었다. 시간에 맞추어 중학영어방송을 보았다. 진행자 선생님과 외국인 선생님이 중학교 1학년 영어 내용을 알려주는 내용.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애를 쓴다.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지희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다. 못 알아듣는 언어를 계속해서 듣다보니 알게 되는 새로움. 생경한 말을 여러 번 연습하고 그 단어가 이해가 되고 혀 끝에서 감도는 새로움을 맛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중학영어방송을 다 들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비틀즈의 'yesterday'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시작하는 부분을 다 듣고 진행자 선생님이 가사를 알려주고 다시 노래를 들으면서 중학영어를 끝을 맺었다.


지희는 비틀즈의 이 곡이 머릿속에 맴돌면서 이 곡을 더 듣고 싶었다. TV에서 나오는 다른 가요나 팝송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멜로디의 여운, 허무감, 아름다움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픈데 아름답다'

지희는 알게 되었다.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구나. 커버렸구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여운을 남기고 흐린 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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