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 근황
가능하면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많이 만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생소한 분야의 책을 지속적으로 읽었다.
.. 그 과정이 정규교육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타인의 지혜를 염탐하고 훔치는 멋진 기회가 되었다.
박경철(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 ’중)
여름방학이 지난 9월.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몸이 변해가는 시기
서서히 아이들 중에 염색하는 아이들도 생기고
아이들 눈썹이 하나도 없는 아이들이 생겼다.
누가 유행시켰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붉은 빛이 도는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옆머리는 목까지 길게, 앞머리는 눈썹 위로, 눈썹은 거의 없는 채로, 치마는 밑단을 내어 발목까지 오게 하고 다녔다.
그 아이들 무리가 지나갈 때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클레오파트라'라고 이름을 붙였다. 흔히들 '날라리'라고 부르는 그 무리의 아이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던 아이도 그렇게 한 무리들이 되면 마치 물감이 번지는 것처럼 아이들이 클레오파트라가 되어오곤 했다.
클레오파트라 무리는 한 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반의 몇 명, 또 다른 반의 여러 명이 생겨났다.
그 무리는 옆 학교의 아이들과 패싸움을 했다느니, 가출을 몇 번 했다느니, 언니들이 불러내서 언니들에게 돈을 상납해야한다느니 그 아이들을 둘러싼 소문들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지희로서는 아이들이 그렇게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아이들의 진짜 눈에 띄는 변화는 아이들의 행동이었다. 아이들은 다같이 모여 화장실에서 침을 뱉었다. 왜 그렇게 침을 뱉는지 모르지만 침을 뱉어댔다. 동네 아저씨들이 침을 뱉는 것보더도 더 깊은 숨을 쉬며 ‘캭’ 하고 뱉는다. 멀리 뱉기 내기를 하는 건지 다같이 모여서 그랬다.
클레오파트라 무리의 아이들이 침을 뱉기 시작하자 나머지 아이들은 그 아이들을 슬슬 피하기 시작하고 화장실에도 조심스럽게 다녀왔다. 다행히 지희는 클레오파트라 무리 친구 중에 같은 반 친구 경희다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무섭지 않았지만 지희도 그 아이들이 침을 뱉을 때마다 더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희는 나중에서야 아이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희는 그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모여서 침을 뱉듯 담배도 어딘가에서 저렇게 모여서 피울 거라고 짐작했다.
경희는 그 무리들 친구들 중에서는 착한 축에 속했다. 클레오파트라 무리들이 자기들의 세력을 믿고 새치기를 하려고 하다가도 경희가 눈짓을 하면 쭈볏쭈볏하면 뒤로 갔다. 다른 아이들과도 이야기하고 곧잘 우스개 소리도 해서 반 친구들이 슬금슬금 피하지를 않았다. 지희도 경희가 가끔 우스개 소리를 하거나 가끔 농담을 할 때 같이 따라웃기도 했다. 지희가 피하지 않으니 지희에게 말도 걸고 친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가끔 하기 시작했다. 경희는 이따금 학교에 나오지 않더니 겨울이 가자 거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팔에 유난히 많았던 상처와 긁힌 자국, 아이들에게 자랑 아닌 자랑으로 팔의 칼을 그었던 자국이 학교에 잘 보이지 않는 이유였을 거라고 다들 마음으로 짐작은 했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이유에 대해 용기있게 묻지를 못했다.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게 된 그 시절 빈자리를 보면서 경희는 어디에 있나 다들 궁금해 했지만 경희의 근황을 아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경희가 학교를 자퇴했다는 이야기는 다음 학년에 가서야 들었다.
유난히 농담을 잘하던 아이, 우스개소리를 하면서 춤을 추던 아이, 클레오 파트라 무리였던 그 아이는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까 또다른 계절을 지내며 지희가 마음으로 그 아이를 떠올렸다.
최근에 딸아이가 자기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바다행>
책을 읽을 수록 마음이 아팠는데 아마도 내가 딸아이를 키우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학창시절에 보았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려서이기도 하다.
현실감있는 묘사가 읽는 이를 슬픈 감정에 빠지게 한다.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SBN=8932035350&start=pm_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