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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만의 이유

딸아이의 다리

by 가온슬기

그녀는 시골에서 자랐다.

그녀의 엄마는 두 딸을 데리고 전쟁통에 아들을 못 낳는 집에 두 번째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았다. 딸로 태어난 그녀 자신의 존재는 엄마가 간절히 바랬던 아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좌절된 꿈이었다.


좌절된 꿈은 또 있었다. 언니들과는 자매들이지만 아버지가 달랐기 때문에 성이 달랐다. 언니들을 따라다녔지만 자신의 성이 같지 않다는 사실이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 언니들과 성이 다른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엄마가 낳은 딸 셋,

그녀와 두 언니들은 비슷하게 생겼다.

여성스럽고 새하얀 피부

풍성한 머리 숱

갸름하고 뾰족한 얼굴, 큰 눈, 짙은 속눈썹

누가봐도 자매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체형이 달랐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의 언니들과는 달리 큰 키에 약간은 통통한 체형의 그녀.


남자 아이들은 그녀의 통통한 다리를 놀렸다. 언니들도 가끔 그녀의 다리를 가지고 놀리기도 했다. 통통한 다리에 대한 놀림은 그녀에게는 외모 비하로만은 아니었다. 언니와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지점이었다.


‘쟤는 언니들과 달라.’

‘쟤는 어디에도 속한 애가 아니야.’


언니들과 성이 다른 것은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몸매는 아니었다. 교복을 입을 때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내놓아야하는 다리는 그녀가 언니들과 다르다는 걸 보이는 증명사진이었다.


통통한 다리를 가졌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위협이었다. 정체성의 문제이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고립의 문제였다. 그녀에게는 그랬다.


그녀는 결혼이 늦었다. 늦은 결혼도 그녀의 딸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기에는 충분했다.


결혼이란 우연과 필연이라는 씨줄과 날줄의 연결이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혼은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지만 기다림이 길었던 그녀의 사정은 그녀가 예쁘지 않아서 날씬하지 않아서 다리가 예쁘지 않아서 선택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딸을 볼 때의 눈을 왜곡시키에 충분했다. 불안이라는 렌즈는 그녀의 눈에 돋보기 안경처럼 딸의 다리를 더 크게 보이게 했다.


그녀가 자신의 큰 딸의 합창대회 사진을 보았을 때 다른 여자 아이들과는 달리 약간은 두꺼워 보이는 다리가 보인 그 사진 한 장은 그녀가 그토록 마주하기 싫어하는 과거를 들추는 ‘소환장’ 같은 것이다.


“ 당신의 딸은 당신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될 지 모르오. 저 다리를 보시오.“


그녀 마음 속 재판장이 그녀를 소환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거부하고 싶었다.


‘아니야, 우리 아이는 달라. 나보다 낫다구.‘


하지만 그녀의 눈은 이미 불안감에 젖었고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딸아이의 다리는 자신의 다리와 똑같았다.


그녀는 불안해졌다.

그녀는 딸을 보호하고 싶었다.

딸이 예쁘게 예쁘게 자라서 멋진 남자에게 일찍 선택받아 자신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랬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려면 예뻐야하는데, 날 닮다니'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딸은 하릴없이

제 아빠처럼 책만 본다. 책밖에 모르는 제 아빠를 닮은 딸아이는 그저 자기 방에서 책만 읽는다.


예쁘게 꾸며도 모자랄 세상인데, 아이는 여자답지 못했다. 동네 여자 아이들과는 다르다.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동네 여자아이들과 놀지도 밖을 잘 나가지도 않는다. 아이에게 몇 번이나 여자는 예쁘게 꾸며야한다고 말해도 책만 본다. 다리는 어떻게 하려는지는 태평하다.


문득 아이에게 말한다는 것이 ‘무다리'라는 말이 잘못 나왔다. 그 후에는 아이에게 충격요법으로 몇 번 더 말했지만 딸아이는 조금 신경 쓰는 듯 하다가도 외모에 신경을 쓰질 않는다. 아이는 그녀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더욱 말이 없고 책 속으로 파고들었다.




학창시절을 지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지희는 자신의 다리가 잘못 생긴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 왜곡된 시선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 후 지희는 자신의 몸과 화해했고 그 때부터 지희는 자신의 몸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로부터도 더 오랜 후에야 지희는 딸의 체형에 대한 엄마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지희는

자신의 몸에게서,

엄마에게서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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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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