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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의 두 친구

연극수업(2)

by 가온슬기


선희가 1학년 입학 당시 눈에 띄게 된 것은 독특한 교복 차림 때문이었다. 모두들 치마를 입고 다니는데 선희만 바지를 입고 다녔다. 지희도 친구들도 그 이유를 궁금해 했고 몇몇은 추측하긴 했지만 선뜻 선희에게 물어보는 아이는 없었다.


선희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난히 빛났다. 유달리 예쁘지도, 똑똑해보이지도 부유해 보이지도 않는 아이. 그렇지만 선희는 유난히 잘 웃었다. 특히 까만 피부와 대비되게 하얗게 빛나는 치아를 보이고는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어보였다. 선희의 쾌활한 성격탓인지 친구가 많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했다.


지희도 선희가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다영이는 지희를 방과후 직전 화장실로 따로 불러내었다.


“있잖아. 대본 맞춰서 음향 테이프 만드는 거. 엄마가 학교에 남아서 만들지 말고 우리집에 오디오가 있고 CD도 있으니까 우리 집에서 만들래. 너 시간 돼?”


“응, 나 시간 돼. 선희도 시간되는지 물어볼까?”


다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니. 안 돼. 우리 엄마가 공부 못하는 애는 데려오지 말래. 선희 걔 딱 봐도 공부 못하게 생겼잖아. 걔는 안 되고 너는 돼. 너는 공부는 잘하니까.“


지희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음이 되었다. 대놓고 친구를 그 어떤 애라고 단정적으로 말한 아이는 다영이가 처음이었다. 선을 긋는 이유가 공부 때문이라 더 놀랐다. 지희와 선희의 성적을 어떻게 알았는지 놀랐고 엄마가 친구를 성적으로 나눈다는 말에 더 혼란스러웠다.


선희에게는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얼버무리며 따돌리고 다영이를 따라가는 길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친해지기라도 한 듯 집에 가면서 지희의 팔장을 꼈다.가면서 자기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 우리집에 우리 아파트 안 사는 애 데려오는 건 처음이야.“


다영이 집은 학교 옆 아파트였다. 묻지 않았는데도 이 아파트는 동마다 평수가 다르다, 몇 동 사는지만 알면 몇 평인지 안다, 자기아빠는 대기업 높은 직급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다영이 집은 그야 말로 좋은 집이다.


없는 것 없이 훌륭한 집.

전망 좋은 층. 넓은 평수.

넓은 거실 한가운데에 오디오와 텔레비전 세트.

깨끗하게 닦인 거실 테이블.

예쁘게 깎아놓은 과일과 준비된 음료.

둘을 기다리고 있던 다영이 엄마는 고생하나 안 해 본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서 공부를 못하는 애는 데려오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시장.

돼지 머리와 순대가 삶아지는 들통을 지나는 골목

미용실과 집이 반반인 집

세 아이가 나눠쓰는 방 하나.

작은 텔레비전 하나와 아이들 책으로 뒤덮인 안방.


지금 서 있는 다영이의 공간과

지희의 공간의 대비.


다영이가 말한 오디오는 좋은 것이다. CD를 한꺼번에 여러 개 넣을 수 있고 돌아가면서 플레이가 되는 게 신기했다. 음반을 틀어놓고 멋진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는 집이라니 지희가 살고 있는 시장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집.


선희를 같이 데려오지 못한 것에 마음이 걸렸다. 좋은 걸 갖추어놓고 살아도 마음씀이 각팍한 다영이와다영이 엄마의 마음씀이 아쉬워서 더 무거웠다. 다영이를 처음 보았을 때 차가워보였던 그 인상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지희는 다영이와 대본을 보면서 같이 음반에서 음악 이것 저것 골라서 공테이프에 녹음하면서 옮겨담았다. 나머지 부분은 다영이가 해오기로 해서 음향작업은 생각 외로 빨리 끝났지만 집에서 나왔을 떄 지희는 오랜 시간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홀가분했다.


지희는 버스에 타서 선희의 집을 떠올렸다. 그리고 선희를 떠올렸다. 선희의 집에 놀러갔을 때 선희네 오래된 아파트에서 복도에 둘이 앉아서 놀던 일, 둘이 TV를 보면서 깔깔깔 웃던 일, 과자에 버터를 올려서 지희에게 건네주던 선희가 환하게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드디어 음향도 대본도 완성된 일주일 후, 아이들은 매일 남아서 음향, 소품을 갖추고 연극 연습을 본격적으로 했다. 다영이는 음향팀 녹음은 자기가 다 해왔으니 자기는 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연극 연습이 끝난 어느 날, 집에 가는 데 선희가 말했다.


“ 나 사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 있었는데, 나 네가 다영이 집에 간 거 알고 있었어. 처음에는 화도 나고 섭섭했는데 니가 계속 신경쓰고 미안해하는 거 같애서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어.“


지희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 아,,, 그게,, 자기 엄마를 이야기하니까. 다영이 엄마가 친구를 한 명만 오라고 했다고 해서. 음향은 만들어야 하고, 내가 뭐라고 해야할 지를 모르겠어서 가겠다고 그랬어. “


울 것 같은 표정의 지희, 힘들게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미안해… 많이 속상했지?”


선희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속상했는데, 지금은 괜찮아. 나 생각외로 엄청 강한 사람이거든, 이런 일로 마음 약해질 내가 아니야.”


지희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 알아, 너 밝은 애인 거. 씩씩하고.”


선희는 결심했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음, 이건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인데, 내가 바지 입고 다니는 건, 내가 어렸을 때 크게 교통 사고를 당했었던 흉터가 있어서야. 나 유치원 때 다친 거야. 트럭에 치었거든. 그 때는 잘 걷지도 못해서 힘들었어. 우리 엄마가 재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잘 걸을 수 있게 된거고. 아직은 몇 번 피부 재건 수술 해야해서 우리 엄마는 계속 아빠랑 같이 건설현장 나가는거고.”


선희는 그 말을 하고는 지희의 어깨를 툭 치면서 지희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 , 선희는 자신의 아픔을 나누었다.


솔직히 다영이 엄마 앞에서 초라하게 비쳐질까 조바심냈던 지희. 다영이로 인해 마음이 다쳤던 지희. 하지만 지희의 마음에 밝은 빛이 살짝 들어왔다. 특유의 긍정성으로 장애를 입은 아이를 밝게 키운 선희의 엄마와 성적과 사는 곳으로 사람을 나누는 다른 아이의 엄마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마음의 비밀을 나누어 준 선희와 매일 연극 연습을 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연습을 하면서 지희는 무엇이 아름다운 삶인가를 배웠다. 그리고 선희에게 밝게 웃는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도 배웠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그 중요한 걸 선희를 통해 배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나 자신이 시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자라기도 했고 학교 공간이 나에게는 인문교양과 만나는 몇 안 되는 공간이어서도 그러하다.


이 책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라는 책에서 나온

공간심리학이라는 개념이 신선했다.


‘우리를 바꾸는 것이 공간이구나’라는

신박한 깨달음.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가볍게 읽어볼만하다.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SBN=8927805275&start=pm_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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