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수업(4)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기르고 싶은가?
글을 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천연덕스럽게 별주부를 연기한 정미,
얄미운 토끼 연기를 잘 소화한 소희,
용왕님의 목소리 연기를 그럴 듯하게 한 민정이
사회선생님과 영어선생님을 따라하는 연기를 한 예원이와 주희까지.
사회선생님과 영어 선생님 연기를 하는 친구들이 나올 때 교실이 떠나가라 함성이 이어졌다.
평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회 선생님은 배시시 웃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무마했다. 자신의 역할을 한 친구에게 손짓하며 연기를 잘했다는 그의 따스한 격려.
아이들의 거대한 함성소리에도 멀쩡했던 영어선생님도 자신을 따라하는 학생의 연기에는 얼굴이 빨개졌다. 얼굴이 빨개지는 선생님을 보니 아이들은 더 좋아라하면서 연극을 지켜보았다.
1학년 3반 연극은 대성공.
연기하는 친구들에게 엄마 아빠 한복을 공수해와서 연기팀에게 입히고 용왕님 수염을 하나하나 붙이느라 고생했던 소품팀.
전지에 바다와 산, 용궁의 모습을 손으로 다 그리고 장면 전환이 될 때마다 종이를 들고 다니며 식은 땀흘린 무대팀.
장면에 음향을 잘 맞추어서 극의 서사를 돋보이게 했던 다영이, 지희, 선희의 음향팀.
'다영이가 집에서 작업을 잘 해와서 극이 돋보이긴 했어.'
지희는 마음속으로 다영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희는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늘 차가워보이는 다영이도 그 순간만큼은 윙크를 했다.
국어선생님은 연극이 마치자 인사를 시키고 박수를 받게 했다. 주인공부터 단역을 맡은 아이들, 조명, 의상, 소품을 맡은 아이들, 지희가 포함된 음향팀까지 . 누구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격려받고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대본팀 아이들을 일어나게 했다.
대본을 쓰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웠을지 이야기하시며 대본팀 아이들을 격려했다.
국어부장 소진이와 대본팀 아이들이 일어났다. 국어부장 소진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잘 남은 적이 없었다. 되려 지희와 선희, 예슬이가 남아서 대본을 썼다는 걸 스스로 아는 대본팀 아이들은 쭈볏대며 일어났다. 소진이가 지희 쪽으로 손을 흔들면서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그러면서 국어선생님께 가서 귓속말로 말을 했다.
선생님은
" 대본팀 친구들을 도와준 친구들이 있다네요. 또다른 대본팀 일어나보죠."
하면서 더 큰 박수를 유도했다. 지희와 선희 그리고 예슬이는 겸연쩍어 하면서 일어나서 오랜 동안 박수를 받았다.
집으로 가는 길. 지희는 한참을 생각했다.
오늘 연극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연극도 재미있고 사회선생님과 영어선생님의 등장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것은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남아서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며 대본을 썼던 그 2주간의 시간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선희, 소진이, 예슬이와 떠들면서 만들었던 과정들.
친구들과 글을 쓰는 공동의 작업을 해본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