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듣기
2학년이 되고 아이들은 옷에 관심이 많아졌다.
지희는 특별히 옷차림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옷을 잘 입는 선생님을 보면 눈길이 더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러 선생님들 중에서도 음악 선생님의 옷차림은 특별했다. 음악 선생님은 50대 정도로 보이는 나이.
하지만 선생님은 늘 컬이 잘 말린 상태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이가 있지만 우아하다. 늘 정장스타일의 옷을 입었는데 선생님의 옷차림을 특별하게 한 것은 선생님의 악세사리였다.
선생님은 귀걸이와 반지를 늘 세트로 맞추고 왔는데 누가보아도 고가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시장에서 살아가던 지희로서는 선생님의 옷차림이 신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인 것은 확실했다.
선생님이 특별한 또다른 이유는 숙제때문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숙제를 내주셨다.
“앞으로 3개월 간 여러분은 클래식을 듣고 , 그 곡의 제목과 작곡과 그리고 그 곡의 러닝 타임을 적어오는 숙제를 하게 될거에요. 음악은 일주일에 두 번 들었으니까 금요일 선생님에게 검사를 맞도록 해요. “
아이들은 그게 뭐냐며 이 희한한 숙제가 마음이 들지 않는 눈치였다.
“이번주부터 숙제 시작이에요. 집에 음반이 없는 친구는 클래식 FM을 듣고 오세요. 아나운서가 어떤 곡을 들었는지 말해줄 거에요. 작곡가와 곡이름, 들은 시간까지 꼼꼼히 적어와요.“
아이들은 생전 처음 해보는 숙제에 당황했다.
지희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
쉬는 시간, 아이들은 아우성이다.
“아무리 음악선생님이라고 해도 매주 내주는 숙제는 너무 한 거 아냐?“
“ 영어, 수학도 아니고 너무 한거지.”
지희의 방.
갈색 책상 위에 라디오.
93.1 MHZ 주파수를 맞춘다.
영어숙제를 펴놓고 라디오를 듣다가 음악 공책에 음악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곡가의 이름이나 연주자의 이름을 얼른 빨리 적어내린다.
“멘델스존, 현악 5중주..”
“ 악,, 또 놓쳤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제목을 잘 받아적지는 못했지만 8분 정도 들은 것 같다. 음악 공책에 멘델스존과 현악 5중주를 받아적었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시간이 지나갔다.
3개월이 지나고 선생님은 이제 그만 들어도 좋다고 말했다.아이들은 ‘휴’하고 한숨을 쉬고, 지희도 이제 긴장상태로 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음악숙제가 끝나고도 공부하기 위해 책상에 앉을 때 지희는 93.1MHZ 를 틀었다.
별밤도 좋고 인기가요도 좋지만 지희도 클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귀가 익숙해졌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사춘기 시절을 지나는 아이들의 감정의 파도에
클래식 음악이 감정의 폭을
잔잔하게 해주는 방파제 같은 역할을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고전 음악이라는 교양의 옷을 선물해주었다. 선생님의 멋진 패션 센스와 주얼리보다 더 빛나는 음악의 센스. 적어도 지희에게는 그랬다.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
합창대회가 끝나고도 지희의 혀 끝에는 가곡 <보리밭>가사가 맴돌았는데 가끔 클래식 FM에서 나오는 <보리밭>을 들을 때면 아니 보리밭 뿐만이 아니라 합창대회에서 나온 가곡을 들을 때면 괜시리 마음이 좋았다.
지희만의 세계가 하나 추가된 느낌,
그 느낌때문에 계속 라디오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