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권, <강아지풀 수염 아저씨랑 바랭이 풀 우산 아줌마랑>
강아지풀 수염 아저씨랑 바랭이 풀 우산 아줌마랑
송진권
명개흙 동글동글 뭉쳐 경단 빚고
풀꽃 따다 얹어 칡 잎에 싸서 가자
너는 강아지풀 수염 아저씨
나는 바랭이 풀 우산 아줌마
누운 허수아비 일으키고
잠든 꾸구리 깨워 같이 가자
너는 강아지풀 수염을 달고
나는 바랭이 풀 우산을 쓰고
질경이 민들레 따라 까치발 뛰며 가자
풀잎 이슬 받아 세수하고
오동잎 징검다리 건너가자
잠든 시냇물 깨우고
소나기 삼형제랑 같이 노래하며 가자
풀잎을 잡고 올라와
무지개다리 기어오르는 달팽이를 타고 가자
너는 강아지풀 수염 아저씨
나는 바랭이 풀 우산 아줌마
⟪새 그리는 방법⟫(문학동네 2014)
강아지풀 수염을 단 너는 아빠, 바랭이 풀 우산을 쓴 나는 엄마. 너랑 나랑 둘이서 소꿉놀이를 합니다. 아직 작고 어린 아이들은 엄마 아빠, 그러니까 어른 흉내를 내며 놉니다. 이 시 속의 소꿉놀이는 역할놀이라기보다 다른 존재로 바뀌는 변신놀이에 가깝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면, 세계 역시 살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너와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이 시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긴, 그게 뭐 중요할까요. 명개, 검고 고운 흙으로 빚은 경단 떡 위에 풀꽃 데코를 얹고 칡잎 주머니에 싸서 출발하는 제법 든든한 여행길입니다. 도로시가 에메랄드시의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만나러 갈 때 혼자가 아니듯이, 누운 허수아비와 잠들었던 꾸구리와 함께 가는 길입니다. 질경이 민들레처럼 까치발을 뛰어 보고, 이슬에 세수하고, 오동잎 징검다리를 건널 때 시는 더욱 판타지의 세계로 도약합니다. 시냇물 동무가 합류하고, 소나기 삼형제가 합류하고, 달팽이가 합류하면서 판타지의 3단 고음이 완성됩니다. 판타지는 일상을 깨우는 것이어서, 버려지고 죽어가고 소외되는 것들을 환기하기도 하지만 이 낭만적인 소꿉은 읽는 것 만으로도 이상한 위로를 줍니다.
*사족_바랭이 풀 우산을 쓰면 비 다 맞을텐데요... 그래서 더 재밌고 사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