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울 이야기
송선미
거울 속에 내가 있었다
거울 속의 나에게 거울을 들려 주었다
거울 속의 내가 들고 있는 거울 속에 거울을 들고 있는 나
거울 속의 내가 들고 있는 거울 속에 내가 들고 있는 거울 속에 거울을 들고 있는 거울 속의 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을 속의 거을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이 여는 문을
나는 눈 꼭 감고
힘껏 밀었다
— <동시마중> (2015년 1,2월호)
수많은 것들이 화폭에 담길 수 있을 것이다. 하늘, 구름, 나무, 참새, 바람, 당신...... 그 모든 것들이 또한 나의 눈동자에 담길 수 있을 것이다, 하늘, 구름, 나무, 참새, 그리고.... 그런데 이 모든 것들 가운데, 화폭에, 눈동자에, 담길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나'. '나'는 거울이 있어야만 담긴다. 그리하여 모든 거울 속에는 내가 있다. 모든 거울 속에는 수많은, 그러나 단 하나인, 그래서 '나'인, 내가 담겨 있다.
함기석
이상하다 거울을 보면
왜 거울 속에
내가 안 보이는 걸까?
한밤중에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엔 파도가 친다
물새들이 나는 섬도 보이고
고래의 울음 소리 들린다
왜 나는 안 보이는 걸까?
거울 속에선 계속 파도 소리 들리는데
내가 바라보면, 내가 없는
이상한 거울
— <아무래도 수상해> (문학동네 15)
그런데 그 거울 속에, 거울 속에야 담기는 단 하나, 내가 보이지 않는다. 물새가 날고 섬이 보이고 파도가 치고 고래가 우는데, 나는 보이지 않는다.
불을
켜야
한다.
김륭
고양이 속에는 고양이만 있고 코끼리 속에는 코끼리만 있고 호랑이 속에는 호랑이만 있고 개구리 속에는 개구리만 있고 원숭이 속에는 원숭이만 있어 궁둥이가 빨갛고,
내가 아는 동물들은 다 그렇게 속을 알 것 같은데
사람 속에는 사람만 있을까?
아빠 속에는 아빠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곰이 살고 엄마 속에는 염소가 살고 우리 선생님 속에는 늑대가 사는지 구렁이가 사는지 모르고, 거울 속의 나는 더 모를 것 같고,
동물원은 우리 집 거울 속에도 있는 것 같은데
내 속에는 하늘하늘 기린이 살까?
거울 속 어딘가에 온갖 동물들이 들락거리는
문이 있을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고,
—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창비 14)
거울 속에는 거울 속에는 거울 속에는 거울 속에는, 언제 보아도 내가 있다. 그것은 내가 든 거울. 고양이가 든 거울 속에는 언제나 고양이가 있겠지. 아빠가 든 거울 속에는 언제나 아빠가 있을 것인데---
내가 거울이라면, 나라는 거울에는 무엇이 비칠까?
김철순
엄마 없는 날
엄마 파운데이션
콕 콕 찍어 바르고
빨간 립스틱도 바르고
검은 눈썹도 그리고
거울을 봤어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엄마!"
작은 소리로
불러 보았어
— <사과의 길>(문동 14)
나와 꼭 닮았다는 그녀를, 나는 만나지 못하였다. 엄마를 꼭 닮았다는 그녀가, 오래오래 거울 앞에서 맘대로 거울로 자신을 흡족히 여기어 예쁘다 말할 수 있을 때, 혹시라도 "엄마!" 작은 소리로 불러 볼 수 있을 때,
나와 꼭 닮았다는 그녀를 만날 용기를 낼 수 있지도 모르겠다.*